[트루라이프] 6천2백만 명을 죽인 '로 대 웨이드' 판결, 뒤집히나?

지난 12월 1일,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역사적인 구두변론이 열렸다. 바로 1973년 ‘로 대 웨이드(Roe v. Wade)’ 낙태합법화 판결을 거의 반세기만에 뒤집을 수 있는 ‘돕스 대 잭슨(Dobbs v. Jackson)’ 사건에 대한 양측의 변론과 대법관들의 질의였다. 2018년 미시시피 주에서 올라온 이 ‘돕스 대 잭슨’은, 15주 이상의 태아에 대한 낙태를 금지하는 주 법안이 위헌인가의 문제를 다루는 사건이다. 미시시피 주의 토마스 돕스(Thomas E. Dobbs) 보건장관을 상대로 미시시피 주의 유일한 낙태시술 제공기관인 잭슨여성보건기구(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가 건 소송이 상고된 것이다. 최종 판결은 내년 6월 말에서 7월로 예상되지만 일반적으로 대법관들의 비공개 토론과 투표는 빠르면 변론 이후 수일 내에 이루어진다. 나머지 시간은 판결문과 소수의견 작성 및 조율로 할애된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느 때처럼 기각되거나 낙태금지측이 패소할 사건이었지만, 작년 말 에이미 코니 배럿(Amy Coney Barrett)의 대법관 임명으로 연방대법원의 판도가 180도 바뀌면서 이번 심리에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재 ‘프로라이프’ 입장으로 알려진 대법관은, 부시(Bush) 부자(父子) 대통령이 각각 임명한 클라렌스 토마스(Clarence Thomas)와 사무엘 알리토(Samuel Alito),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이 단임 동안 임명한 닐 고르서치(Neil Gorsuch),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 에이미 배럿으로, 대법원 구성 총 9명 중 5명이다. (아들 부시가 임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일반적으로 보수 성향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중립’을 자처하는 진보에 가깝다.)

 

 

이번처럼 로 대 웨이드 판결에 전면 도전하는 사건이 연방대법원까지 올라온 것은 29년 만이다. 1992년 ‘가족계획협회 대 케이시(Planned Parenthood v. Casey)’ 사건은 로 대 웨이드 판결의 여러 문제점을 인정했지만 결국 여론을 의식해 선례구속성의 원칙(stare decisis)을 이유로 1973년 판결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그사이 프로라이프 진영은 이번과 같은 기회를 대비해 수많은 근거자료들을 축적했다. 이번 돕스 사건에 대한 의견서(amicus briefs)만 무려 140건 이상이 제출되었다고 한다.

 

 

대법원 밖에서는 전날부터 프로라이프 진영의 젊은 학생들 수십 명이 추운 겨울밤을 새며 자리를 지켰다. 당일에는 오전 내내 수백 명의 프로라이프 진영과 그보다 현저히 적은 ‘프로초이스’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시위를 이어갔다. 대체적으로 평화로운 시위였지만 양측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프로라이프 진영은 축제분위기였고 프로초이스 진영은 고함과 비명 소리로 가득한 절규에 가까웠다. 심지어 프로초이스 진영의 일부 여성시위자는 현장에서 낙태약을 삼키는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벌였고 일부는 경찰의 통제 불응으로 수십 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낙태 전면 폐지 혹은 로(Roe) 무효화

 

판결은 대략 네 개의 가능성으로 점쳐진다. 첫째 가능성은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정도를 넘어 아예 낙태 자체를 위헌으로 못 박는 것이다. 이는 프로라이프 진영에서도 소위 “폐지론자(abolitionist)”로 구분되는 이들이 원하는 결과다. 미국 독립선언문과 헌법이 보장하는 ‘생명권’이 태아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에 연방대법원이 이를 확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정 즉시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입장에서 볼 때 대법원의 낙태 위헌 판결은 마땅한 결과이겠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적다. 사건의 제목에서도 ‘태아의 자기생존력 이전의 모든 낙태 금지(pre-viability prohibitions on abortion)’가 위헌인지를 묻는 심리라고 선을 긋고 있다. 현재 대법관 중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6명의 법관들도, 아마도 클라렌스 토마스(Clarence Thomas)를 제외하고는, 대법원이 아예 낙태 위헌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입장은 없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두 번째 판결은 48년 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하여 무효화하는 것이다. 이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존중한 1992년 ‘케이시 대 가족계획협회(Casey v. Planned Parenthood)’ 판결도 함께 뒤집히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로 대 웨이드 판결은 1973년 당시에도 많은 논란이 되었다.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제인 로(본명은 노마 맥코비, Norma McCorvey)는 변호인 사라 웨딩턴(Sarah Weddington)에 의해 임신 사유가 강간이라고 위증할 것을 종용받는다거나 대법관 중 3명의 가족이 낙태관련기관에서 일을 하는 등 절차상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다. 또한 헌법에서 ‘사생활권(right to privacy)’이라는 생소한 기본권을 억지로 해석해 내 ‘여성의 낙태권’을 급조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당시 다수 의견을 작성한 해리 블랙먼(Harry Blackmun) 대법관은 판결문의 상당 부분을 여성 선택권의 근거로써 낙태의 ‘역사’에 대해 서술했는데, 낙태가 미국의 건국보다도 이전의 영국 보통법 전통을 따르던 식민 시절부터 계속 용인되어져 온 관행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낙태합법화는 미국 원래의 전통을 비범죄화하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명백한 역사왜곡이자 사기극에 가까운 거짓말로 드러났다. 블랙먼은 이 주장에 대해 6개의 각주에서 모두 씨릴 민스 주니어(Cyril Means Jr.)라는 법학자를 인용했는데, 민스는 1960년대 낙태운동가로서 고의적으로 미국 역사를 왜곡, 날조한 인물이었다. 민스의 거짓 자료를 블랙먼에게 전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마 맥코비의 변호인이었던 사라 웨딩턴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무효화하는 판결은 결과적으로 연방대법원이 낙태 문제에 있어 중립을 지킨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낙태의 합법 여부 판단을 각 주와 입법부에 돌려주는 것이 된다. 이 경우 각 50개 주에서 치열한 입법전쟁이 예상된다. 사실상 프로라이프 진영에서는 ‘로 이후(After Roe)’라는 연합 홈페이지도 만들면서 이 경우에 대비해 수많은 입법과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프로초이스 측도 마찬가지다. 결국 민주당이 우위인 주에서는 기존보다 더 극단적인 낙태 허용안을 입법할 것이고 공화당이 우위인 주에서는 낙태가능 주수를 가능한 낮춰 6주로 하는 ‘심장박동법’ 등의 입법을 추진할 것이다. 일부 남부 주에서는 낙태 전면 금지법도 예상된다.

 

또한 로 대 웨이드가 뒤집힐 경우, 내년 11월 중간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낙태 이슈로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연방의회는 낙태문제를 두고 입법을 타진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 때 보수 진영이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면, 프로초이스 진영이 바라는 대로 낙태허용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어 결국 로 대 웨이드 판결을 성문화(codify)하여 연방법으로 못 박아버리는 참담한 결과도 가능하다.

 

사실 작년에 사망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uth Bader Ginsburg) 대법관을 포함한 프로초이스 진영의 많은 학자들도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며, 여성 낙태권 등의 선택권은 입법부에서의 투쟁을 통해 얻어내야 진정한 승리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프로라이프 진영이 기대하는대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더라도 프로라이프 진영이 치러야 할 싸움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래서 ‘로를 뒤집는 건 시작일 뿐(overturning Roe is only the beginning)’이라는 다짐이 결코 빈말이 아니다.

 

로-케이시-돕스 낙태합법화 혹은 트럼프 대법관의 배신

 

세 번째 가능성은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지 않으면서, 미시시피 주의 15주 이상 낙태금지 법안을 합헌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사실 1992년 케이시(Casey) 판결도 그런 식이었다. 케이시 사건의 판결은 로 대 웨이드의 여러 문제점을 인정했다. 하지만 선례 구속성의 원칙(stare decisis)에 따라 로의 판결을 뒤집지 않고 그 본질적 입장(여성 선택권)을 존중하면서, 단지 낙태 허용 주수만 임신 2분기(28주)에서 태아가 스스로 생존 가능하다고 판단되는 24주까지로 ‘개정’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주수를 기준으로 한 낙태 허용 판결은 낙태 예방이나 감소에 큰 영향을 못 미친다는 것이다. 로나 케이시나 모두 해당 주수 이후에도 여성의 생명 및 ‘건강 상’ 위협이 될 경우 낙태가 허용이 되는데, ‘건강 상’이라는 단서에는 신체의 위협뿐 아니라 정신적인 부담까지도 포함이 된다. 실제 로와 쌍둥이 판결로 알려진 ‘도 대 볼튼(Doe v. Bolton)’ 판결에서는, 산모의 정신과 감정 그리고 심지어 가족사항까지 포함한 매우 넒은 의미의 ‘건강’을 위협하는 경우에 태아 출생 바로 직전까지 낙태가 가능한 것으로 규정해 놓았다. 또한 케이시의 판결문에는 정부의 낙태규제가 여성의 ‘낙태권’ 행사에 ‘부당한 부담(undue burden)’을 지워선 안 된다는 매우 모호한 문구가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번에 대법원이 미시시피의 15주 이상 낙태 금지 법안에 손을 들어준다면, 프로라이프 입장에서는 낙태 허용 주수의 축소로 상당한 진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 낙태를 막는 데에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태아의 자기생존력(viability)은 어디까지나 인위적인 기준일뿐이다.

 

또한 이런 애매한 절충안으로 타협하는 판결은 프로라이프 진영의 위기의식과 결속력을 현저히 감소시킨다. 케이시 판결 당시에도 그랬던 것처럼, 돕스의 15주 이상 낙태 금지 ‘개정’은 사실상 허상일 수 있는 ‘작은 단계적 승리’의 위안으로 프로라이프 운동력의 힘을 꺾고 오히려 로–케이시–돕스로 이어지는 낙태합법화의 강한 선례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세 번째 가능성은 프로라이프 진영의 리더들이 사실 가장 염려하는 판결이다.

 

 

모든 판결에서 언제나 중립적인 입장을 고수하며 절충안을 찾는 존 로버츠(John Roberts) 대법원장은 사실 이러한 타협안을 시도하려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 질의에서 로버츠 대법원장은 프로초이스 변호인에게 수차례 ‘여성의 선택권이 이슈가 아니라 15주 기준을 문제 삼는 것 아니냐’고 물으면서 쟁점을 옮기려 한 것이다. 하지만 변호인은 끝까지 특정 임신 주수가 아닌 ‘여성의 자유와 평등법이 보장하는 낙태권’을 주장하면서 절충점을 피했다. 이는 사실 프로초이스 진영의 전략 실패로 보인다. 더 이상 물러설 지점이 없는 프로라이프 측 변호인도 처음부터 로 대 웨이드 판결의 명백한 잘못을 지적하면서 타협의 가능성을 일축했다.

 

네 번째 가능성은 미시시피의 15주 이상 낙태금지법을 위헌으로 판결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프로라이프 입장이라고 믿었던 세 명의 신참 대법관(고르서치, 캐버노, 배럿) 중 누군가의 ‘배신’을 의미한다. 그리고 트럼프/펜스 행정부의 최종적 실패를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2016년 트럼프와 펜스의 당선은 상당 부분 ‘프로라이프 대법관 임명’이라는 공약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구두변론의 분위기와 질의의 내용을 볼 때 대법관의 ‘배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일단 사건을 기각하지 않고 받아드린 것부터 변화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보수 대법관 모두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에 대한 심각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케이건(Kagan)과 브레이어(Breyer) 등의 진보 대법관조차도 로 판결의 내용을 변호하기보다 ‘선례구속성 원칙’을 주로 강조했다. 또 다른 진보 대법관인 소토마이어(Sotomayor)은 이렇게 판결을 번복한다면 여론의 눈에 대법원은 ‘악취(stench)’를 풍기는 존재로 전락할 것이라며 상당히 감정적이고 거친 말을 내뱉었다.

 

잘못된 선례는 마땅히 깨져야

 

이번에도 결국 대법관들이 선례구속성의 원칙(stare decisis)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관건이다. 케이시 사건에서도 당시 대법관들은 로의 선례를 뒤집는 것이 대법원의 정통성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선례구속성의 원칙을 ‘대법원의 판단이 곧 진리’라는 식으로 오해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선례구속성의 원칙은 법에 따른 법원 판결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위한 것이지, 법원의 법해석이 그 자체로 진리가 되기 때문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닌,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추구하는 법치주의 국가라면 말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법(대법원의 경우 헌법)에 따라 법원의 과거 잘못된 해석과 판단을 인정하고 수정하는 것이 법원의 정통성을 세우는 것이 된다.

 

 

연방대법원이 잘못된 판례를 뒤집은 사례는 가장 대표적으로 플레시 대 퍼거슨(Plessy v. Fergusson) 판결이 있다. 바로 1896년 미국의 인종차별적 분리정책에 대해 ‘분리하되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며 손을 들어준 유명한 판결로 연방대법원 역사상 최악의 판결로 꼽는다. 이 판결은 58년 후인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Brown v. Board of Education)’ 판결로 뒤집혔다. 알리토 대법관은 이번 변론에서 플레시 사건을 거론하며 아무런 상황의 변화가 없더라도 판결 자체에 현저한 잘못(egregious wrong)이 드러난다면 마땅히 뒤집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날 질의 도중 북한을 언급하기도 했다. 로버츠는 20주 이상의 태아의 낙태를 허용하는 나라는 미국을 포함해 7개 나라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이 북한이나 중국과 같은 인권침해국가와 같은 수준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로버츠 대법원장은 어느 프로라이프 단체의 2014년 자료를 참고한 것이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로 올해 1월 1일부터 대한민국에서도 낙태에 대한 아무런 규제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로 대 웨이드 판결로 인해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무려 6천 2백만 명의 태아가 빛을 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해왔다. 이로 인해 미국의 도덕양심은 파괴되어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위기의식을 통해, 지난 반세기 미국 보수 진영은 수많은 분열과 좌절을 겪으면서도 프로라이프 이슈에서만큼은 어마어마한 연합력과 조직력을 통해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이제 로(Roe) 시대가 가고 돕스(Dobbs)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의 정치권은 여전하겠지만 풀뿌리 프로라이프 세대를 통해 미국의 양심은 회복될 희망이 조금은 보인다. 이제 한국의 기독 보수 프로라이프 진영이 따라가야 할 길이다.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 고려대 북한학 박사

- 런던대 킹스컬리지 분쟁안보개발학 석사, 종교학 학사

 

 

(트루스헤럴드 = 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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