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투데이 2024. 03. 17.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40317010008950&ref=search 사회주의자들은 역사를 무기로 이용한다. 이를 역사무기화 전략이라도 부른다. 이는 스탈린의 Disinformation(허위조작정보) 전략의 하나인데 투쟁 수단으로 정교하게 발전해 왔다. 스탈린과 모택동, 김일성을 비롯한 사회주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우상화를 위해 역사를 조작해 온 사실과, 한반도 역사를 중화민족 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의 동북공정 등을 상기한다면 그들의 역사무기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역사무기의 구체적 적용은 내러티브의 형태로 나타난다. 내러티브란 어떤 사건에 대한 스토리라인을 말하는데 이를 특정한 견해를 규정하고 제한하는 수단으로 교묘하게 악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거짓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고, 진실한 정보를 고의적으로 편향된 방법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이슈에 대한 특정한 견해를 강제하거나 겁박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시대적 배경과 환경을 무시하고 민주·민족·통일을 절대적인 잣대로 내세우며 이승만 대통령을 독재자로 매도하는
역사학자 서울대 박태균 교수, 날조 또는 무지? 그는 한 대중강연에서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된 건 문맹률이 높은 당시 상황상 기호1번을 달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이승만은 52년 대선에서는 기호2번을, 56년과 60년 대선에서는 각각 기호2번과 3번으로 출마했다. 역사학자라는 사람이 자신의 전공 분야에 관해, 명백히 잘못된 사실을 대중 앞에서 외친 것이다. 날조일까? 무지일까? 어느 쪽이 건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날조라면 당연히 파면감이고, 실수라 해도 뭐라 변명하기 힘든 무지와 편견을 여실하게 드러낸 것이다. 조국 교수의 오상방위 사건과 맞먹을듯. https://www.chosun.com/.../02/10/BRAP6IYRMBEXHGGSWK4PSRLXSU/
섭리의 역사. 1.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게 한 두 분. 하지만 두 분 관계가 그리 호의적이었던 건 아니다. 이제는 많이 알려진 것처럼 박정희는 대구폭동 주동자였던 친형 박상희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것에 분을 품고 남로당 군사 총책이자 좌파 목사인 이재복의 회유를 받아 남로당에 가입했다. 6.25 전쟁 중 진행된 직선제 개헌 이후, 군부를 중심으로 이승만을 축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여기에 박정희가 연루된 정황들이 포착되기도 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귀국을 불허하고 하와이 망명객으로 만든건 장면과 박정희다. 이승만은 망명할 의사가 없었고, 고국을 늘 그리워했다. 이승만 서거 후 박정희 대통령이 발표한 조사는 이승만에 대한 감사와 존경 그리고 깊은 사죄가 담겨있다. 아직 읽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에서 일독해 보시기 바란다. bit.ly/3u6lWln 2. 사법농단 사건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법농단에 관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5년여 만에 내려진 1심 판결이다. 현재 국힘의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당시 수사팀장이었고, 수사를 지휘한 윤석렬 서울중앙지검장은 대통령이 됐다. 탄핵사태 이후 보수진영의 공적이었던 윤석
트루스펀드의 첫 프로젝트, 건국전쟁이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하와이로 간 대통령'이라는 제목으로 펀딩을 시작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시나리오가 세 번 정도 완전히 바뀌었고, 결국 '건국전쟁'이란 이름으로 개봉했습니다. 김덕영 감독님의 다큐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리고 그런 작품을 만든 분이 이승만 다큐를 만들면 뭔가 다르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평소 보수우파진영의 문화예술 지원을 어떻게 끌어내야 하는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활동가들의 생계를 지원하는 구체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에 관해서도요. 그래서 만든 것이 트루스펀드입니다. 김덕영 감독님도 이에 고민이 많았고, 이승만 영화를 만들 생각을 시작한 무렵 아무런 인맥도 지원도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다가 트루스펀드의 첫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초기 펀딩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목표금액 오천만원 중 천오백 만원에서 정체가 될 무렵 대한민국사랑회 김길자 회장님이 연락을 주셨고 나머지 금액을 모금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사랑회 어른들을 설득하는 과정도 쉽지는 않았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전문적인 이해가 높은 분들이시라 구체적인 의견이 많으셨고,
일본군이 위안소를 운영한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꽃다운 여성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고, 어떤 이들은 속아서 팔려갔다. 당시 사회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던 일본인이나 일본군 개인에 의한 성적유린도 없지 않았다. 가슴 아픈 역사다. 다만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부녀자를 납치해서 동원했다는 주장은 실체가 빈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검찰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기에 결국 무죄판결이 났다. 류교수님 사태가 불거졌을 때, 연대 트포에서 류교수님에 대한 마녀사냥에 문제를 제기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안타깝게도 연대의 한 여학우가 대자보에 반대하며 트포를 탈퇴했다. 참 괜찮은 친구였는데, 그 친구가 이 판결을 꼭 확인해 보길 바란다. 희생자와 약자에 대한 배려는 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역사와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그걸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에 대한 유린은 공분을 자아내기 쉬운 주제이기에 통일전선전술의 좋은 소재가 된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안타까운 삶의 굴곡을 악용해 온 악날한 거짓말들이 이제는 세상에 널리 드러나길 소망한다. 언론의 조리돌림
윤건영 의원이 김영호 장관과 한국자유회의를 극우라 칭했다. 또 어떤 이들은 윤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와 싸우겠다고 한 것을 두고 극우 전체주의라 비난한다. 그런데 극우 전체주의가 도대체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종북, 종중 세력은 걸핏하면 주권자인 국민을 참칭하는데, 이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극우 전체주의 세력이다. - 전체주의는 무엇인가? 헌번 제1조 제2항은 모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국민은 국민 전체를 말하는 추상적인 국민이다.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주권자인 국민을 참칭하는 것이 바로 전체주의다. 인민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추앙하는 사람들은 혁명하는 사람만을 인간으로 규정한다. 기득권은 적폐이고 타도의 대상일 뿐이다. 프랑스혁명, 캄보디아, 소련과 중국, 북한에서 자행된 학살은 이러한 인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리고 공산당을 비롯한 혁명적 전위정당 또는 이를 대변하는 1인이 주권자인 '국민'을 전유한다. 히틀러나 무솔리니, 김씨 일가가 군림하는 방법이다. 한국자유회의는 모든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전제한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공개적으로 표방한다. 전체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 극우?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문제로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육사 안에 있는 동상은 이전으로 가닥을 잡았고, 국방부 앞에 있는 동상은 아직 검토 중인 것으로 보인다.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동상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레닌에게 하사 받은 소련의 군복과 모자, 권총을 두른 홍범도 장군의 동상이 굳이 육사와 국방부에 있어야 하는가? 러시아 혁명에 성공한 이후, 소비에트 정권은 1918년 새로운 군복을 디자인 했다. 육사와 국방부 앞에 있는 홍장군의 동상은 소련 볼셰비키 적군의 군복 외투(시넬)를 입은 모양이다. 그가 쓴 모자는 부데노브카 Budenovka 라고 불리는 천으로 된 군모다. 왼쪽 어깨에서 대각선으로 가슴을 가로지르는 멜빵은 레닌에게 하사 받은 권총을 찬 것이다. 홍범도는 그 권총으로 자유시 참변의 책임을 묻는 김창수와 김오남을 살해했다. 동상 제작의 기초가 된 것으로 추정되는 홍범도 장군의 사진은 자유시 참변 이후 그가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한 뒤, 레닌에게서 선물 받은 군복과 권총을 두르고 기념촬영을 한 모습이다. 소련군 복장의 동상이 육사에 있었고, 사생들은 거기에 경례를 했던 것이다. 지극히 신중하지 못한 처사였다. 그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이유 - 공산주의자들의 낯 뜨거운 민낯 레닌과 이동휘를 비롯한 공산주의자들은 한인 무장 독립세력을 와해시킨 자유시 참변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심지어 레닌 정부는 일본과 밀약을 통해 한인 독립군의 처리를 약속합니다. 이동휘는 한인 무장 독립세력들이 자유시로 집결하도록 선전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한인 독립군의 적군(Red Army) 편입을 약속했습니다. 자유시 참변에서 생존한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군들도 적군으로 편입된 후 대부분 강제전역과 무장해제를 당했습니다. 소련은 약소국 독립을 내세웠습니다. 하지만 소련을 통해 독립한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현실은 형식적인 독립국이었고, 소련에 예속된 국가였습니다. 민주집중제에 따라 철저하게 모스크바를 정점으로한 지휘체계를 따르게 됩니다. 이동휘나 홍범도가 독립을 향한 열망으로 순수하게 소련을 택했을런지는 모르지만, 그 결과는 잘해야 소련의 속국이었고, 이들은 소련의 국민으로 죽었습니다. (홍범도는 소련 국적 취득사실이 명백히 확인됩니다. 이동휘는 추가적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아래에서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난 이유와 관련된 몇 가지 내용들을 정리합니다. - 당시 소비에트 정권(볼셰비키 레닌 정
이념의 시대가 갔다고? 천만의 말씀. 좌파 논객의 일갈이다.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선언했다. 후보시절 토론에서도 그랬고 취임후 3.1절 기념사에서도 이념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했다. 그리고 실용을 내세웠다. 이에 대해 좌파 논객 조원종씨는 이명박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뒤, '이념의 시대는 갔다고? 천만의 말씀'이라는 제목의 글을 프레시안에 기고했다. 이념전쟁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이대통령은 그 해 5월부터 좌익세력이 앞장 선 미국산 수입 소고기 파동과 광우병 논란으로 임기 말까지 곤혹을 치렀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념보다 정책이 중요하다'고 했다. 대통합과 대탕평을 천명했다. 하지만 좌파 세력은 세월호 사건을 이용해 대대적인 공세를 전개했고, 박대통령은 결국 탄핵까지 당했다. 이념이란 생각을 말한다. 하나의 국가와 사회가 기반으로 하는 '생각의 틀'이 바로 이념이다. 이는 바로 한 나라의 정체성이다. '탈이념' 하자는 말은 결국 국가정체성을 갖다 버리자는 말이다. 좌파는 자신들의 이념을 민주, 민족, 평화, 통일, 환경, 인권, 민생 같은 아름다운 명제 뒤에 가려버린다. '탈이념'도 좌익의 수법이
홍범도 장군을 미화하는 기독교 좌파의 문제점 1. 민족을 언급하면서 감상적인 접근으로 홍범도 장군을 미화하는 글들이 있다. 본질을 흐리는 위험한 모습들이 보이는데, 안타까운 건 일부 기독교 사역자들이 그런 흐름에 적극적으로 앞장서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가 더 이상 여기에 침묵해선 안된다. 2. 한 목사님은, 홍범도 장군은 민족의 독립이라는 시대적 공익을 위해 사익을 버리고 철저히 헌신한 사람이고, 공익을 위해 철저히 헌신한 점에서 모세와 예수의 모습과도 비슷하니, 평생 사익에 쩔어사는 주제의 사람들은 입을 닫으라는 투다. 이것을 이번 주 설교말씀으로 준비하셨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jungsik.cha/posts/pfbid02c1s8dp4tzE8FfHfBtT82uyXzvpZMizqTWuvkVnQJjvuwcChV779XPWVuLeHXuAiyl 3. 선교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어떤 분은 홍범도 장군을 지금의 잣대로 재단해선 안된다고 한다. 역사 해석은 그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면서 홍범도 장군을 옹호한다. 3.1운동 이후 미국은 독립운동의 대안이 되지 못했고, 일본과 싸우기 위해서는 중국공산당, 소련공산당과 협력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