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과 통일을 꿈꾸는 사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부흥과 통일을 위해 기도하시는 청년분들 오늘 이곳에 다 모이신 줄 믿습니다. 제가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청춘’이십니까? ‘사무엘 울만’(Samuel Ullman)의 <청춘>이라는 제목의 시에 따르면,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한다”라고 합니다. 비록 아직 휴전 중이긴 하지만, 지난 6.25전쟁 승리의 주역인 ‘맥아더’ 장군은 이 <청춘>이라는 시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2023 리바이벌 코리아>로 모였습니다. 오늘부터 우리 모두는 청년입니다. 단,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에 대해 진지한 사람으로서 부흥과 통일한국을 꿈꾸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100세의 나이로 이 꿈을 꾸는 자는 영원히 청년이지만, 이 꿈을 꾸지 않는 20대 청년이 있다면 그 마음의 상태는 잠시 시들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청년으로 천국갑시다!
여러분 부흥을 꿈꾸십니까? 부흥을 원하십니까? 통일 대한민국이 여러분의 사명이 맞습니까? 우리가 바라고 기도하는 부흥과 통일이 어쩌면 교회 안에서 그저 때 되면 외치는 구호로 전락하진 않았습니까? 오늘날 부흥과 통일이 주님께 내가 원하는 소원을 빌기 위한 일종의 ‘마법의 주문’(magic word)과 같이 되어버리진 않았습니까? 오늘 우리의 예배와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다시 한번 이 땅의 큰 부흥과 통일대한민국이 여기 모인 청년들의 사명(mission)으로, 또 소명(calling)으로 회복되길 소망합니다. 나아가 그 사명이 형체 없는 몽상이 아닌 구체적인 모습의 천직(beruf; profession)이 되기 원합니다.
부흥이란 무엇인가
(1)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부흥이 무엇입니까? 먼저, 부흥이란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가시적인 현상입니다. 보이지 않은 영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영광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도할 때 이 세대 안에 그 부흥을 허락해 주시도록 간절히 기도합시다.
(2) 인간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것
두번째로, 또 부흥은 무엇입니까? 부흥은 우리 사람으로서는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부흥은 전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강력하고 주권적인 역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의 정수는 가린 채 성도의 가려운 곳만 긁어주는 기독교. 잘 먹고 잘 사는 법을 설파하는 소위 ‘잘잘법 기독교’로는 부흥의 가장자리에도 닿지 못합니다. 대신 진리에 대해 진지한 여기 모인 청년들, 이름하여 ‘그리스도인으로 잘 사는 법’을 구하는 이곳의 청년들은 오늘 우리의 기도를 통해 반드시 다시 한번 우리 자신의 보좌에서 내려와 엎드려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그 분만이 허락하실 수 있는 주권적 역사를 오늘 행하시도록 기도합시다.
(3) 지금은 막혀버린 이전 세대의 우물(유업)을 다시 팔 때 주어지는 것
셋째, 또 부흥은 무엇입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막고 흙으로 메워버린 이전의 우물을 다시 팔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Jacob)이 과거에 팠던 우물을 다시 찾아가 모든 방해들을 직면하고 손수 파낼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간계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그 나무로부터 떨어지도록 만듭니다. 특별히 그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고, 건강한 전통과 이전 세대를 부정하도록 청년들을 미혹합니다. 루소(Jean-Jacques Rousseau)와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그토록 노래했던 ‘그리스도를 떠난 자유’, 나무의 가지 스스로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 거짓된 철학이 우리의 눈과 귀를 쉼 없이 흔들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다음과 같습니다.
“부모는 부모고 너는 너야. 전통은 고리타분한 거야. 뭐? 전통? 계보? 역사? 그거 기득권이 계급 유지하려고 다 만들어낸 얘기야! 이제 우리가 다시 써야지. 전통적 가족의 시대가 저물고 핵가족이 왔다는 거 몰라? 이제 핵가족이 가고 핵개인의 시대야! 분리 되도 돼. 공동체? 연합? 아니야. 신은 죽었어! 너 아직도 그걸 믿어? 도대체 너 말고 아직도 그리스도의 계보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해? 뭐? 낳고 낳고 낳고? 성육신? 연약한 노예만 양산하는 노예의 도덕. 거기서 너도 어서 나와. 너 행복하고 싶다며? 그냥 쉽게 생각해. 이 편이 더 낳아. 너가 원할 때 찾고, 너가 싫어 질 때 그냥 떠나면 돼. 각자 기호에 맞게 네 정체성에 맞게. 그때 그때 선택해. 그렇게 너와 같은 것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대해. 그게 자유고 그게 사랑이야. 네 자신에 대한 절-대-긍-정. 그거면 충분해. 초인이라고 들어봤지? 넘어가는 존재, 극복하는 존재, 언제나 명랑한 존재. 너 스스로 할 수 있어!”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더 짧게, 더 감각적으로, 더 직관적으로 부분적 진리, 유사 진리를 담아 그것이 실재인 양 쉼 없이 쏟아내는 피상적인 언어로는 말씀의 하나님(로고스 예수님)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서점가의 소위 ‘아포리즘’으로는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세상의 잠언들은 단지 모조품일 뿐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넘어가는 존재'(Übermensch, 초인)가 되라고 하지만, 구원받은 성도의 존재 의미는 우리의 죄를 친히 '넘어가신'(passover) 유월절 어린양의 보혈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아버지 야곱이 이전에 팠던 그 우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전 세대의 영적인 유업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대적이 끊고자 했던 믿음의 계보와 수많은 신앙의 유산을 받아 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곳에서 아비 세대의 우물을 다시 파며 수고하고 애쓰며 분투하는 자에게만 주어질 수 있는 것이 부흥입니다. 오늘 우리 전심으로 회개하여 원수들에 의해 막혀버린 이전의 우물을 다시 팔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우리가 교회로서 맡은 사명인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스스로 질문해봅시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이 복된 소식은 시대마다 다르게 정의되는 것입니까? 이전 세대의 복음, 우리 세대의 복음. 너와 나의 복음은 서로 다른 것입니까? 수년 전에 봤던 <크로싱>이라는 영화에서 들었던 한 대사가 떠오릅니다. “예수는 남조선에만 있습니까?” 이 말이 현대의 편한 복음과 본회퍼 목사님이 지적한 ‘값싼 은혜’(cheap grace)에 익숙해진 우리의 마음을 사뭇 겸손케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과연 그렇습니까? 이곳 강남 땅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위에는 예수가 안 계십니까? 예수는 이 곳에만 계십니까?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복음은 시대를 관통하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내용은 절대적입니다. 복음은 모든 것을 압도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자신이자 우리의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복음은 기본적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공로는 절대로 끼어들 틈을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다만, 복음에는 유일한 조건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누구든지 구원을 주십니다. 복음은 이렇게 그 열매를 누릴 대상에 대해서는 철저히 개방되어 있지만, 동시에 구원의 조건에 대해서는 배타적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인류가 그토록 애원하는 구원의 소식이지만, 그 문은 오직 하나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복음의 역설이라 말합니다.
지난 목요일 저녁에 제가 주님 앞에 회개한 일이 있어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그안에진리교회>처럼 코로나 상황에도 공예배를 멈추지 않고 성도와 이 땅의 정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던 캐나다의 한 교회(GraceLife Church of Edmonton)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목회하시는 제임스 코츠(James Coates) 목사님의 설교문 일부를 전합니다.
“No one is entitled to mercy. That should be obvious. Mercy by nature is undeserved. God isn’t obligated to be merciful to anyone. He could send the entire human race to hell and it would be entirely just, would it not?” 제가 거칠게 의역하자면 이렇습니다. “누구도 은혜를 얻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명확한 진실입니다. 은혜란 그 속성상 우리가 받기에 합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자비로우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는 그런 의무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전인류를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전적으로 합리적이고 정당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그날 제가 속한 청년부 지체들에게 이것을 나누며 회개했습니다. "주님, 저는 은혜가 공짜라서 은혜라고 생각했습니다. 구원에는 나의 행위가 들어갈 틈이 없어서 은혜라며 복음을 머리로 알고 다음세대를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주님. 오늘 다시 보니 도무지 합당하지 않은 나. 나와 같이 더럽고 구제불능의 죄인을 건지신 일. 하나님의 본체가 낮고 낮은 이 땅에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나를 구원하신 일. 그리스도께서 지신 갈보리의 십자가 사건이 제 삶의 은혜임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대한민국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먼저 받은 이 복음의 은혜를 전할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복음이 우리 청년 세대에게 온전히 회복되길 기도합니다.
2023년의 대한민국이 가지는 의미
(1) 희년(year of Jubilee)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2023년은 50년 만에 돌아오는 ‘희년’(year of Jubilee)입니다. 레위기 25장 10절 말씀에 따라 우리 교회가 이 시즌을 거룩하게 금식하며 기도하고 오늘 이렇게 광장에 나와서 "전국의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할 수 있음이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레위기 말씀으로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우리 동포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회복하고 저마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2) 정전협정 70주년이자 한미동맹 70주년
사랑하는 여러분, 2023년은 특별히 정전협정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동시에 한미동맹 70주년이기도 합니다. 이 특별한 때를 맞아 서둘러 우리 동포들이 희망을 가져야 할 이유를 외치고 싶습니다. 즉, 빨리 이 연설을 마치고 승리를 선포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잠시 에둘러 가고자 합니다. 이 시간을 마치고 함께 엎드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른 기도를 드리기 위해 현재 우리가 당면한 싸움,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그림을 더욱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앞서 말씀드린 성경의 희년과 70년 바벨론 포로 생활 종식과 해방이 주는 의미가 오늘 우리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의 대적 마귀 또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기념하는 '전승절'의 의미
여러분 혹시 공산 전체주의 북한이 선전하는 ‘전승절’의 의미를 아시나요? 북한 정권이 외부 선전을 목적으로 직접 운영하는 ‘조선중앙통신’과 북한의 유일 당인 노동당의 기관지 ‘노동신문’은 “7월 27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조국 해방전쟁 승리 70돌 경축 열병식이 거행됐다”라고 지난 7월 28일 보도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도대체 전승절이 무엇이기에 북한은 매년 전승절을 기념하는 걸까요? 전승절(戰勝節)이란 말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한 날을 기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북한이 자축하는 승리의 대상이 과연 누구인가?’라는 것입니다.
6.25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은 ‘6.25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북한은 여전히 지난 70년간 실패한 전쟁에서 승리를 주장하는 중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증언에 따르면, 정전협정이 체결된 다음 날인 1953년 7월 28일 김일성은 방송 연설에서 6.25 전쟁이 “서양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와 이승만 매국도당에 대항에서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3년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이며 역사적 승리”라 말했습니다. 즉, 북한은 전승절을 이용해서 자유민주주의 동맹인 대한민국과 미국을 침략자로 몰아 가짜 승리를 자축하는 것입니다.
<Japan Inside Out> -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이승만 박사의 경고
이 말을 들으신 여러분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저 장막 뒤에 가려진 동포의 영생의 문제와 자유의 문제가 오늘 우리의 지치고 바쁜 일상을 멈추도록 하기엔 너무나 먼 이야기일까요? 현존하는 전체주의 집단이 전승절을 통해 조롱하는 것은 대한민국과 이 나라의 자유민주 헌법을 넘어섭니다. 성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러분 아시지요? 영원한 주체의 태양신을 찬양하는 김정은은 지금 만군의 주요 만왕의 왕이신 우리 여호와 하나님을 한껏 조롱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박사가 1941년 당시 영문으로 쓰신 <Japan Inside Out>(일본내막기)는 천황을 신봉하는 신도주의와 갈수록 노골화되어가던 일본의 군국주의가 합쳐질 때 가까운 미래에 기형적 전체주의가 태동하게 될 것이며, 그것이 결국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전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점을 밝혔습니다. 이 예언적 논설은 약 5개월 뒤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통해 현실화되었고 이때부터 자유 진영은 뒤늦게 이승만의 국제정치적 식견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이 어떻단 말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청년은 주류 미디어가 제공하는 반미 반대한민국 반일의 담론에서 나와 성경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야 합니다. 성경적 세계관에 기초한 80년전 선각자 이승만의 예언이 오늘에도 적용 가능한 정치 및 인문 고전임을 전제로 할 때, 그가 남긴 문서는 과거의 제국주의 일본이 아닌 오늘의 북한과 중국과 같은 공산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경고로 읽어야 합니다. 따라서 여기 모인 믿음의 청년들은 모두 기도하는 자로 교회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과 천부인권을 가진 개인의 자유를 압살하는 두 가지 일을 절대 분리해서 바라보지 맙시다. 아직도 휴전 중인 이 전쟁의 본질은 정치와 사회의 문제가 아닌 바로 ‘우상’의 문제, 즉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의 문제라는 것을 잊지 맙시다.
거룩한 대한민국 위대한 통일한국의 사명
다시 부흥의 주제로 돌아오겠습니다. 앞서 들은 바 다가올 큰 부흥을 준비하기 위해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두 가지는 바로 ‘거룩한 대한민국’과 ‘위대한 통일한국’입니다. 이것은 목사님께서 개교회 담임 목사로서 말씀하신 것이 아닌, 지금도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의 성령께서 목사님의 입술을 통해 선포하신 대한민국 교회와 국가 그리고 개인의 시대적 사명입니다.
이제 연설을 맺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무엘 울만의 시처럼 ‘청춘은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작가가 이 시를 썼을 때 그의 나이는 78세였습니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6.25전쟁을 이끄실 때 그의 나이는 만 73세였습니다. 영국 노예해방을 이끈 윌리엄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두 가지 사명, 노예해방과 관습의 개혁을 목표로 30년 이상을 노예제 종식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을 때 그의 나이는 약 57세였습니다. 이처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주어진 사명에 충실했던 문명의 수호자, 자유의 영웅들은 모두 이 땅에서 청년으로 살았습니다.
기도로 시작한 자유민의 공화국
자유민의 공화국인 대한민국 역사상 첫 공적 기록인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속기록에 따르면 이 나라는 당시 감리교 목회자였던 종로구 이윤영 국회의원의 다음과 같은 기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원컨대,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처럼 대한민국은 그 시작부터 건국의 공로를 하나님께 돌리며 천부인권적 자유가 북한 주민 각인에게 확장되는 통일, 번영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
여러분 마지막으로 선포하고 기도하기 위해 우리 다시 한번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70년전 1953년 7월 27일 조인된 정전협정 이후 성명서를 통해 북한 동포들에게 다음의 연설을 남겼습니다.
“당분간 공산압제에서 계속 고생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될 우리들의 동포들에게 우리는 다음과 같이 외친다. 동포여 희망을 버리지 마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잊지 않을 것이며 모른 체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한국 민족의 기본 목표, 즉 북쪽에 있는 우리의 강토와 동포를 다시 찾고 구해내자는 목표는 계속 남아 있으며 결국 성취되고야 말 것입니다."
제2차 한인자유대회에서 이승만 박사가 언급한 '자유의 물결'
언제나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 주가 오셔서 친히 구하실 것입니다. 1948년 건국될 공화국의 기틀을 다진 1919년 필라델피아 제1차 한인자유대회에 이어서 1942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제2차 한인자유대회에서 이승만 박사가 남긴 연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 한국인들의 슬픔의 눈물은 이제 종막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보십시오! 물결은 해안으로 밀려 들어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승리의 해안으로 말입니다.”
해양정신으로 무장한 자유의 세대가 통일의 길을 만들 것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여기서 다가올 물결은 궁극적으로 "예수의 파도"(Jesus Wave)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들은 에스겔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광장에 선포된 이 말씀이 성령의 역사로 마음껏 운행하도록 기도합시다. 이제 곧 성령의 바람이 예수의 파도를 일으킬 때 우리 모두 청년의 마음으로 예수 기를 들고 주 앞에 예배와 찬송을 드리며 나아갑시다. 그 날에 우리 모두 해양 문명을 통한 그리스도의 복음과 건전한 자유정신을 가지고, 주를 대적하는 마귀의 사상을 물리치며 나아갑시다. 해양으로 들어온 젠더 이념, 퀴어 괴담, 해체주의, 파괴사상을 분별하여 걸러내고, 대륙의 붉은 사상인 공산 전체주의 사상을 성령의 검, 곧 말씀의 검으로 물리치며 나아갑시다. 그렇게 통일한국을 이루고 동북아시아에 복음과 자유를 전하며 열방을 무대로 예수를 전합시다. 궁극적으로 마지막 때 제사장 나라로 쓰임 받을 대한민국의 사명인 ‘K-Mission’이 한반도의 코리아를 넘어, 곧 오실 왕의 대로를 준비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명, 즉 ‘King’s Mission’임을 오늘처럼 광장에 전하고 열방에 전하는 청년 세대가 됩시다. 이제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트루스포럼 = 유중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