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19 필라델피아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광장에서 노래하자!”

다큐멘터리 음악극 <1919 필라델피아> 관람기
자유의 산실, 미국의 ‘필라델피아’
7월 공연은 시민과 함께하는 ‘제헌절 헌법축제’로 열려
<1919 필라델피아> 운동은 다가올 통일헌법 제정 곧 국가 재건 프로젝트로의 초대
거룩한 씨앗 필라델피아와 자유의 미래, 그리고 우리의 역할

 

3차 앙코르 공연 성료한 다큐멘터리 음악극 <1919 필라델피아>

 

지난 7월 15일부터 31일까지 용산아트홀에서 열린 <1919 필라델피아> 3차 공연이 뒷심을 발휘하여 연일 전석 매진으로 성료했다. 본 공연은 1919년 4월 14일에서 16일까지 미국의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자유대회(First Korean Congress)를 소재로 만든 다큐멘터리 음악극이다. 필자는 지난 2차 공연을 다음 세대 청소년들과 단체 관람한 데 이어 이번 3차 공연은 좋은 기회를 통해 초대석에서 관람하는 과분한 특권을 누렸다.

 

3차 공연 무엇이 달라졌나

 

지난 2차 공연에 비해 이번 3차 공연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서재필 역(이지형)과 이승만 역(박종원)의 교체에 있었다.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관객은 해당 작품이 두 배역의 변화로 인해 완전히 새것이 되었다는 평을 나누기도 했다. 서재필과 이승만 박사를 포함한 모든 출연진은 각자의 배역을 안정감 있게 소화했으며, 맡은 배역에 따라 극 중에 실제 눈시울이 붉어지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서재필 박사의 차녀로 등장하는 뮤리엘과 한인자유대회를 널리 홍보하고 진행을 도우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함께 싸운 유대인 기자 조지 베네딕트(George Benedict)가 보인 ‘극중극 형식의 대화’가 음악극의 전체 흐름을 속도와 분위기 면에서 알맞게 조율해 나갔다. 또한 무대 가장 안쪽에 있는 밴드의 연주와 함께한 솔로와 중창이 관객의 호응과 어우러져 깊은 감동을 더 했다.

 

자유의 산실, 미국의 ‘필라델피아’

 

1919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제1차 한인자유대회를 영문으로 ‘First Korean Congress’로 지칭 및 표기한다. 해당 표기는 미국 건국의 과정에서 당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모인 1774년 제1차 대륙회의(The First Continental Congress) 및 창조 질서와 천부인권을 담은 독립선언을 천명한 1776년 7월 4일 제2차 대륙회의(The Second Continental Congress)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회의 장소와 관련해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조평세 박사(북한학, 보수주의 블로그 사미즈닷코리아(SamizdatKorea.org) 운영)의 언론 인터뷰에 따르면 “이승만과 서재필 등이 굳이 필라델피아에서 '한인자유대회'를 열기로 한 것은 당시 미국의 발자취를 좇아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7월 공연은 시민과 함께하는 ‘제헌절 헌법축제’로 열려

 

특별히 지난 7월 용산 공연은 ‘7월의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다큐멘터리 공연과 함께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분야별로 저명한 연사들을 섭외하여 특별 강연을 병행한 대한민국 최초의 '헌법 축제’였다. ‘1919 친우회’ 위원장 채규영 박사는 “이번 특별 행사를 통해 참여한 모든 분이 어떻게 대한민국이 설계되고 완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 그리고 우리의 남은 비전은 무엇인지 깊이 생각하며 미래의 자유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꿈을 꿀 기회의 장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며 <1919 필라델피아> 3차 공연 감사 인사와 함께 향후 모임에 대한 기대를 전했다.

 

<1919 필라델피아> 운동 - 통일헌법 제정 곧 국가 재건 프로젝트로의 초대

 

<1919 필라델피아> 제작 총괄을 맡은 이혜경 교수(국민대 명예교수, 아트플랫폼 대표)는 “대한민국 건국 서사의 올바른 정립이 곧 국가 재건의 선결 과제”라는 취지의 말을 VON(Voice of NPK) 유튜브 방송을 통해 전했다.

 

 

법치와자유민주주의연대(NPK) 김미영 사무총장은 7월 10일 온라인으로 진행한 ‘건국 세미나’를 통해 “<1919 필라델피아>는 헌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이 공연의 관람자 및 친우회는 단순 대중이 아닌 선각자 그룹”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이제 통일 헌법 제정을 위한 권력을 형성하는 문화(시민)운동이 필요한 시대가 왔다”며 “이러한 운동에서 우리가 담아낼 주된 메시지는 북한 사람에게도 기본권, 즉 천부인권으로써 자명한 권리가 있다는 선언”이라고 전했다.

 

 

또한 7월 17일 제헌절 공연일에 도태우 변호사(선진화 아카데미)는 “대한민국 헌법: 건국과 통일” 특강을 통해 다음과 같이 이승만 대통령의 1948년 8월 15일 건국 기념사를 나눴다. “독재주의가 자유와 진흥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역사에 증명된 것입니다. 민주제도가 어렵기도 하고 또한 더디기도 한 것이지만 의로운 것이 종말에는 악을 이기는 이치를 우리는 믿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정체에 요소는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우리 일반시민은 누구나 다 일체로 투표할 권리와 참정할 권리를 가진 것입니다... 개인으로나 도당으로나 정부를 전복하려는 사실이 증명되는 때에는 결코 용서가 없을 것이니 극히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도태우 변호사는 “근대적 자유의 가치를 선물한 유대-기독교적 전통, 인문주의로 대표되는 그리스-로마적 전통, 그리고 상향식으로 공동체 구성원 자치의 법을 만들어나가는 영미 보통법적 전통의 영향 아래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며 이제 어떤 것이 우리에게 다음 과제 또는 시대적 키워드로 다가올지는 답을 유보한 채 각자에게 맡기며 제헌절 세미나를 마쳤다.

 

 

통일을 준비하는 다음 주자로서 우리의 역할

 

100년 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무명의 청년들의 ‘대한인 대표자회의’ 덕분에 자유대한민국은 공산화되지 않았다. 나아가 미국식 대통령제와 함께 이만큼의 자유, 독립 및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불편해도 마주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이 존재한다. 그것은 현재 대한민국의 자유민주 공화정 그리고 가정을 포함한 사회의 근본적 토대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급진 페미니즘 및 젠더/퀴어 이념 등으로부터 전방위적으로 위협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반응 및 대응은 개인과 공동체의 사명에 따라 다를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각론보다 상대적으로 넓은 범위에서 <1919 필라델피아>를 통한 세 가지 교훈을 아래에 정리해 본다.

 

첫째, 우리는 유대인 기자 ‘조지 베네딕트(George Benedict)’와 대한민국 건설자들의 순교 신앙을 기억하고 따라야 한다. <1919 필라델피아>를 통해 친족이 말살당해도, 자녀를 잃어도, 혹여나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로부터 비방과 위협을 받는다고 해도, 오히려 평생의 업적과 전 재산을 걸고 독립운동과 애국정신을 실천한 선배들의 삶을 배운다. 무엇보다 자유의 대의를 향해 품은 그들의 고귀한 양심과 성실을 본받아 우리도 선인들의 인류애 및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계승해야겠다.

 

둘째, 헌법상 대한민국의 절반만이 누리고 있는 자유, 독립, 그리고 번영을 확장하기 위한 통일 담론의 장은 오직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의 통일의 광장뿐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교육해야 한다. 여전히 소위 깨어(woke)있다고 하는 우리 사회 지식인들과 그들의 사유를 공유하는 일부 시민 사회가 아직 끝나지 않은 체제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최인훈의 소설 ‘광장’(1960년 작)의 이명준의 인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분명히 다가올 통일한국에서 체제 선택의 중립국, 제3국은 없다. 사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또는 김일성 주체 주의)에 대한 의도적 양비론, 또는 민족주의에 근거한 감성적 권리포기(waiver)는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바라는 지식인의 투정 또는 전략적 모호함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공산주의 및 사회주의의 대응 개념이 마르크스 일당들이 규정한 자본주의가 아닌, (1) 법치에 기반한 자유민주주의와 (2) 시장경제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정, 학교, 교회나 사회 전 영역에까지 다음 세대 교육을 중심으로 헌법적으로 올바른 민주시민 교양을 확립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민주주의가 담보하는 신앙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 등의 관점에서 볼 때, 베네딕트 기자의 언론 활동과 조력이 없었다면 1919년의 필라델피아 한인 자유 대회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서재필 박사가 인생의 수많은 부침을 통해서도 물러서지 않고, 본인이 먼저 배우고 경험한 미국의 민주주의를 후세대 청년들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가능했다. 또한 당시 최고의 근대교육을 받은 이승만 박사가 다음 세대 교육, 대중 계몽 그리고 개인의 감화를 중요시했기에 수십 년간 이어진 국내외 정치 외교 활동 및 교육 사업을 통해 마침내 각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한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다.

 

거룩한 씨앗 필라델피아와 자유의 미래

 

해마다 7월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자유, 독립, 그리고 헌법의 달’이라고 할만하다. 특별히 이러한 7월을 맞아, 미래에 대한 어떠한 보장도 없이 삶의 모든 것을 지급해 나라의 독립과 건국과 번영을 기도한 위대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다큐멘터리 음악극을 통해 만났다. 이제 미국 독립선언(1776)과 미국 연방 헌법 제정(1787)의 도시 필라델피아를 묵상해본다. 완전히 새로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한 ‘거룩한 씨앗’(이사야 6장 13절)이 된 1919년의 필라델피아가 이제 2022년을 맞았다. 다시 새로운 한 세기를 바라며 과연 우리 시대 자유의 미래가 궁금하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의 체제 및 문화 전쟁에서 따뜻한 중립국은 없다. 착한 제3국은 더더욱 없다. 다만, 창조주의 눈에 우주와 같이 소중한 북한의 주민 한 명에게 우리가 먼저 누린 기본권이 확장되길 소원하자. 그렇게 유대인 기자 베네딕트의 마음으로 저마다 작은 소리가 되자. “Again Philadelphia, 이제 모두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광장에서 노래하자!”

 

(트루스헤럴드 = 유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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