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칼럼] 논픽션 ‘김일성의 아이들’, 전쟁 고아들의 가슴 시린 우정과 사랑 뒤에 숨은 악마의 치부

2020년 6.25전쟁 기념일에 맞춰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16개 국제영화제를 비롯해서 권위 있는 해외 언론들의 호평을 받았다. 영화에 이어 감독은 2020년 11월에 영상에 못다한 이야기를 담은 논픽션 <김일성의 아이들>을 출간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인지 상대적으로 국내 관객 및 독자에게는 작품과의 충분한 접점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 같은 정황 아래 다음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북칼럼을 기록한다. 

 

1. 스탈린의 아이들 김일성의 아이들

 

6.25 전쟁과 전쟁고아 문제

 

“6.25 전쟁 중이던 1951년에 북한 전쟁고아들을 실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평양을 출발했다. 이 북한 전쟁고아들을 태운 특별열차는 1951년부터 1953년까지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체코의 이름 모를 도시들로 아이들을 이주 시켰다. 공식 기록만으로도 5천 명이 넘는 대규모 이동이었고, 비공식적으로는 1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도 있다. 도대체 왜 북한의 아이들은 낯선 동유럽으로 이주해야 했을까?” (김덕영, 논픽션 김일성의 아이들, 다큐스토리 출판사, 8-9쪽).

 

 

 

6.25 기습 남침으로 인한 전쟁고아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대한민국과 북한은 당시 서로 다른 방식을 취했다. 먼저 대한민국은 ‘국제입양’이라는 방법을 택했다. 즉, 정부의 도움이 있었을지라도, 그것은 민간의 영역이 큰 부분을 차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북한은 동유럽 ‘위탁 교육’ 방식을 택했다. 이것은 공산주의 종주국 소련과 다른 공산권 국가간에 이뤄진 것으로써 정부의 철저한 통제와 계획에 의한 것이었다. 분명히 당시 남북은 모두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봐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자유 국가간 이뤄진 해외 입양과 공산권 국가의 위탁 교육은 결국 말할 수 없이 큰 차이를 초래했다.

 

 

실패한 공산주의의 도구가 된 스탈린의 아이들

 

1950년대 강제 이주된 전쟁고아들은 일면 스탈린의 아이들(노예)이라 볼 수 있다. 공산주의 국가간의 연대를 보여주고 그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리라 장담했던 당초의 그들의 망상과는 달리, 공산권은 처참히 무너졌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구 소련의 비밀 문서들이 해제됨에 따라 잊혀질 뻔했던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이주에 관한 사실들이 역사의 빛을 보게 되었다. 특히, 루마니아에서 발견된 한 텔레그램에는 김일성이 직접 루마니아 정부에 감사 메시지를 담은 공문을 발송한 자료도 있었다. 저자는 이에 대해 “북한이 당시 전쟁고아들을 통해 동유럽과의 외교 관계를 강화하려는 목적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힌다. 또한 “소련은 경제 지원을 통한 보상 및 군사적 압력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모두 사용하여 북한 전쟁고아 이주 정책을 공산블록 내 국가들에 밀어 부쳤다.”고 전한다. (28-29쪽).

 

스탈린의 아이들에서 김일성의 아이들로

 

그러나 북한의 전쟁고아들은 결국 김일성의 아이들(노예)로 보아야 한다. 이들은 김일성의 압제 아래 인간의 존엄성도 일말의 개인성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김일성이라는 우상감옥으로 집단화 되어버린 북한에서 1960년 즈음을 기점으로 철저히 잊혀지고 소외되었다.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전쟁고아들 틈에 고위층 자제들을 고아로 둔갑시켜서 보냈다고 한다. 1950년대 열악한 북한의 사정들을 감안한다면 북한 고위층 자제들에게는 일종의 유럽으로 해외 유학을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평범한 고아들은 뿔뿔이 흩어져 탄광 노동자나 채석장 일꾼으로 살아가는 것이 고작이었다고 한다. 즉, 그들이 유럽에서 배웠던 기술과 문화를 훗날 북한 사회 발전에 적용시킬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117-118쪽). 

 

저자는 그 이유를 “김일성 우상화 강화를 위한 아이들의 희생으로 보았다. 1960년대부터 북한의 통치체제의 단속을 위해 주체사상 강화와 외국인 배척 운동이 동시에 일어났는데, 이는 북한 고아들의 강제 송환과도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117-118쪽). 끝내 스탈린의 아이들에서 김일성의 아이들로 이용되고 버려진 고아들에게 저질러진 김일성 집단의 야만은 한 폴란드 교사의 증언에도 나타난다. “북한으로 돌아갈 때 아이들은 집단적으로 생활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태운 열차는 이름도 없는 북한 시골 마을에서 정차를 하면서 아이들을 분산시켜서 내려놓았습니다. 한두 명 정도밖에 안 되는 적은 인원들이었습니다.” (스타니스와프 바할, 폴란드 교사, 118-119쪽).

 

 

2. 기록은 역사다

 

기록은 역사다. 이것이 영화와 책 모두에서 <김일성의 아이들>을 관통하는 감독이자 저자의 핵심이다. 저자는 총 15년간 북한의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행적을 취재했다. 저자는 이 책을 그 아이들의 동유럽 집단 이주의 역사를 추적한 논픽션 기록물이라 밝힌다. 

 

제오르제타 미르초유 - 60년의 기록과 기다림

 

저자는 2004년 우연히 루마니아에서 북한인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성에 관한 제보를 받았다. 루마니아의 수도 부쿠레슈티에 살고 있던 그녀의 이름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다. 당시 그녀는 40년 넘게 북한인 남편 ‘조정호’를 찾고 있었다. 1951년 북한 남자 조정호는 3천명의 북한 전쟁고아들을 이끌고 루마니아로 온 교사였다. 당시 동유럽 각국에는 북한 전쟁고아들을 위한 ‘조선인민학교’가 설치 되었고 조정호는 그 학교의 교장이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1)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그들의 연애, (2) 다만, 공산주의 국가의 통제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그들의 관계와 결혼 생활, (3) 주체사상 강화와 함께 이루어진 1960년대 북한의 외국인 배척운동, (4) 북한으로 강제 귀환 된 이후 육체 및 정신적으로 철저히 유린된 충성 당원 조정호의 이야기, 그리고 (5) 지금껏 약 60년간 남편을 기다리며 그의 언어를 독학한 끝에, 16만여개 단어가 수록된 한국어-루마니아어 사전 및 루-한사전을 편찬한 미르초유의 이야기 등을 보다 자세히 만날 수 있다. 

 

고아들의 천사 마리에 코페치카의 기록물

 

그리고 체코 발레치에서 북한 아이들을 돌봐주었던 마리에 코페치카 씨는 치매에 걸리기 전에 아이들에 관한 소중한 기록물을 남겨놓았다. 저자는 “그녀가 남긴 자료들을 소중하게 촬영해서 보관하는 것은 영화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80쪽). 치매에 걸리기 직전 마리에 코페치카는 세상에 이러한 기록을 남겼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유일하게 김일성만은 이런 사실 (아이들이 체코에서 최선의 돌봄을 받고 즐거워했다는 사실)이 기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서양 문화에 영향을 받은 아이들이 북한으로 돌아오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에 코페치카, 체코의 조선인민학교 교사, 85쪽).

 

또한 저자는 마리에 코페치카의 이 같은 증언이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생활의 역사를 설명하는 핵심이라며, 기록으로써의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가치로운 인생을 살았고 그녀의 인생은 기억될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것이 다큐멘터리로 기록을 남기며 살아가는 나의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역사는 기록이며 기록이 사라질 때 역사도 잊혀지는 법이다.” (김덕영 감독, 88쪽).

 

 

3. 김일성의 두려움을 통해 보는 자유의 현재적 의미

김일성이 두려워한 자유의 힘

 

이 책이 기록하고 전하는 김일성의 두려움, 즉 자유의 가치는 미래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중요한 근거이자 요소이다. 따라서, 불편하더라도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김일성의 두려움이다.

 

책에는 김일성의 두려움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담겨있다. 영화에만 그치지 않고 이 책을 꼭 읽어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산권 국가이기는 했으나 유럽에서 공부한 북한의 고아들은 예술과 문화의 영향으로 자유의 개념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특히 문학의 역할이 엄청났다고 한다. “아이들은 동유럽 교사들이 들려주는 고대 그리스 신화, 고전주의 문학,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북한 교사들이 강조하는 획일화된 집단주의와 완전히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71쪽). 저자에 따르면 “김일성의 입장에서는 유럽식 사고방식과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동유럽 북한 전쟁고아들이야말로 자신의 유일사상 체계를 유지하는데 가장 위험한 요소들”이었다. (120쪽). 김일성은 자신의 통치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자유의 가치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자유로운 사고를 가진 고아들의 존재 자체가 김일성에게 위협이 되었다. 저자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김일성은 아이들의 귀환을 두려워했다.” (296쪽).

 

앞서 인용했지만(118-119쪽), 이 책의 기록 중 북한에 관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인물이나 세력에게 가장 읽기 불편한 증언은 다음과 같다. “기차가 북한과 중국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갑자기 간이역에 정차해서 아이들을 내려놓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폴란드에서처럼 함께 지낼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의 편지에는 그들이 북한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각각 역에 따로 내려놓은 것이죠. 모든 아이들이 함께 있을 수 없도록, 이 역에는 두 명, 저 역에는 또 몇 명을 내리도록 한 것입니다. 아이들은 유럽에서 항상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김일성은 애초에 아이들이 북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그렇게 뿔뿔이 분산시키려고 계획했던 것 같아요.” (스타니스와프 바할, 298쪽).

 

 

국내 출판, 영화계 및 정부기관이 <김일성의 아이들>을 불편해하는 이유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은 국제적으로 작품성을 인정받아 약 16개 가량의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입상했으며, AP통신의 보도를 시작으로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텔레그라프, ABC를 포함한 세계 유수의 언론사들이 영화를 조명한 바 있다.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일년 만에 일어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유독 국내에서만 권위 있는 영화제와 언론 등이 이 기록물의 가치에 주목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정치, 경제(정책), 교육, 문화, 예술, 언론, 출판(영화 잡지계 포함), 및 사법부까지 좌경화된 우리 현실을 감안할 때, 국내에서만 지나치게 저평가된 이 작품의 극단적 아이러니는 오히려 작품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선명하게 반증하고 있다.

 

<김일성의 아이들>이 기록영화라는 형식을 통해 전하는 진실 스스로의 덤덤함과 동시에 그 예리함이 지상의 지옥인 북한의 심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사실 감독은 15년간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진실에 근거하여 수집한 기록물로만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길 원했다. 그런데 완성물을 보니 감독이 본래 의도했던 것과는 달리 작품이 전하는 내용이 (1) 국제 전범 김일성 일가와, (2) 정치적 좌우를 불문하고 그에 대해 침묵 동조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자 그룹 중 다수와, 그리고 (3) 시민단체를 포함한 각 영역별 좌익 헤게모니 집단의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2021년 대한민국 언론·미디어 현황 – 자유를 싫어하는 지도자들의 급진 유토피아 선동

 

6.25 남침으로부터 70년이 지난 현 대한민국에 이 자유의 가치가 긴박하다. 1950년대 말에서 60년대를 지나며 부동의 권력을 원했던 김일성 일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자유였듯이, 오늘날 악의적이거나 무책임한 지도자는 바로 이 자유의 가치를 가장 싫어할 수 밖에 없다. 설문조사 결과 국민 다수가 찬성한다고 홍보하는 ‘기본 소득제’ 논의 및 ‘함께 잘사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는 일부 대선주자의 문제적 선동은 말로 듣기에만 달콤할 뿐 결국 함께 망하는 길이다. 다르게 말하면, ‘기본 소득’과 ‘함께 잘사는 세상’이라는 말은 비대한 정부에 의한 자유의 상실 또는 개인의 소멸로 해석해야 한다. 

 

4. 건강한 자유주의자, 보수주의자 및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김덕영 감독의 작품에 주목해야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공산주의)의 갈림길에 선 대전환기를 맞은 대한민국에서 정치, 경제, 특히 문화 예술 분야에서 건강하고 바른 진실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그러한 지적 문화적 풍토 속에서 김덕영 감독의 출현과 동일한 주제를 가진 두 개의 작품을 보면서 작은 희망을 본다. 그는 자유가 빠진 사회주의의 붉은 프로파간다에 물들지 않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김일성 회고록 합법적 판매 및 유통 논란을 통해 보듯이, 표현의 자유를 구실로 자유를 파괴할 자유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는 선명한 목소리를 개인 SNS와 언론을 통해 밝히는 김덕영 감독의 우직함과 진정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5. 진실에 기초한 역사의 퍼즐과 합리적 개인의 선택

 

저자의 말처럼 역사는 기록이고 기록은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기록된 사실의 전파로 우리 미래의 방향과 성질이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끝으로 역사에 대한 태도를 두고 가상의 두 갈래 길을 그려본다. 먼저 기성품으로 주어진 편향적 역사관을 소비하며 겉보기에 넓어 보이고 많은 경우에 마음도 편하지만, 끝내 피상적인 삶으로 이끄는 한 종류의 길이 있다. 그것은 배움과 의심을 포기한 노예의 길이다. 

 

그러나, 다소 미련하게 역사의 진실의 조각을 하나 둘 수집해가며 겉으로는 좁아 보이고 때로는 거칠지만, 궁극적으로 개인의 양심이 자유롭고 나아가 자유 없이 억압받는 자들까지 자유케 할 수 있는 또 다른 길이 있다. 그것은 김일성이 두려워했고, 현 여당(당시 더불어민주당)이 비웃고, 야당이 꺼리는 자유의 길이다. 물론 이 갈래길에서 선택은 각자의 몫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만일 누군가 <김일성의 아이들>을 영화와 책으로 만난다면, 분명 그 사람은 옳은 길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2021년 7월 더워드뉴스(THEWORDNEWS) 기고 칼럼.

 

 

 

 

(트루스헤럴드 = 유중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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