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KBS홀에서 진행하는 유엔참전용사, 영웅을 위한 기념 음악회에 초대합니다> 작년에 참여하신 분들께 훌륭한 피드백을 받은 음악회 입니다. 한국 최고의 여의도 KBS홀에서 진행하는 이번 행사에 참여하실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 등록해 주시기 바랍니다. 티켓은 100장 한정이므로, 꼭 참석 가능하신 경우에만 예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가족, 친구, 동료 및 지인분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많은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일시 : 2025.11.12(수), 오후 7시 장소 : 여의도 KBS 홀 가족, 친구, 동료 및 지인분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 보내시길 바라며, 많은 관심과 홍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INVITATION Join us for the Korean War Memorial Concert at the KBS Hall, Yeouido! Last year’s event received fantastic feedback. If you’d like to attend, please register using the link below. We have 100 tickets available, so kindly reserv
[트루스포럼 월요모임 안내] 돌아오는 주 월요일(10월 27일) 저녁에는 청년발제와 토론으로 진행합니다! 주제: 한국의 민주화운동 : 도시빈민투쟁의 실상 일시: 2025년 10월 27일(월) 오후 7시 장소: 서울대 트루스포럼 센터 (서울 관악구 관악로 168) 항상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트루스포럼 사무국 <오시는 길>
[트루스포럼 월요모임 안내] 돌아오는 10월 20일 월요모임은 <중국의 미래>를 주제로 트루스포럼 김은구 대표님의 강연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참석자분들과의 토론과 나눔시간 또한 진행될 예정입니다. 모임 전후로는 서로 편안하게 교제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시간도 마련되어 있으니 트루스포럼을 응원하시거나 관심 있는 분이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해 주세요 :) 일시: 2025년 10월 20일(월) 오후 7시 장소: 서울대 트루스포럼 센터 (서울 관악구 관악로 168) 항상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도자료] “대한민국을 지켜낸 10월의 선택, 유신” [ 트루스포럼, 유신기념 포스터 부착 캠페인 ] 보수주의 청년단체 트루스포럼(대표 김은구)이 박정희 대통령이 1972년 단행한 10월 유신의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서울대학교에 ‘유신기념 포스터’를 부착했다고 밝혔다. 이번 캠페인은 10월 유신의 역사적 배경과 의의를 대학 사회에 공유하고, 이를 계기로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경제발전의 토대를 되새기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트루스포럼은 포스팅을 통해 “유신은 단순한 독재가 아닌, 북한의 무력 도발과 닉슨 독트린으로 인한 안보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국가적 결단이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강의 기적은 유신의 안정된 정치 기반 위에서 가능했으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번영의 기반에는 유신의 기틀이 있었다는 사실이 잊혀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포스터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메시지가 담겼다: -유신은 대한민국을 지킨 결단이었다. -경제 성장의 기적은 유신 이후 본격화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유신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트루스포럼은 이번 포스터 캠페인을 통해 유신에 대한 편향된 인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당시 국내외 정세
*트루스포럼 유신기념 포스터 / 함께 부착해 주세요! 1969년 선포된 닉슨 독트린은 한국을 비롯한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심각한 안보적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쿠바의 게릴라 혁명에 고무되어 무장공비를 남파하며 지속적인 도발을 감행했습니다. 한편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으로 약 8천만 명이 희생되었고, 캄보디아에서는 약 300만 명이 학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유신은 이처럼 북한의 도발과 국제적 안보 위기로 국가 존립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내려진 결단이었습니다. 유신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습니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종속이론에 기반한 대중경제론을 내세우며 내포적 공업화를 주장했습니다. 그는 무역을 하면 강대국에 종속된다는 이유로 수출주도형 중화학공업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경제 개발의 ‘중단 없는 전진’을 위한 안정적인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1972년 10월 17일 유신을 단행했습니다. 포항제철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철강, 조선, 자동차 산업은 유신을 통해 꽃피운 한강의 기적입니다. 혹자는 대한민국을 가리켜 자유의 방파제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비유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어찌
[트루스포럼 월요모임 안내] 돌아오는 주 월요일(10월 13일) 저녁에는 트루스포럼 김은구 대표의 특강으로 진행합니다! ————— 주제: 10월유신 기념 특강 - 10월유신, 독재인가 혁명인가? 이번 월요모임에서는 1972년 10월 유신이 등장하게 된 시대적 배경을 나누며, 산업화와 국가 안보라는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던 당시 대한민국의 난관을 다룰 예정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후 맥락은 알지 못한 채 박정희 대통령의 10월 유신을 두고 단순히 독재를 위한 수단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10월 유신은 닉슨 독트린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탈냉전 정책으로 인해 발생한 북한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놀라운 발전을 가능케 한 열쇠였습니다. 이번 강연은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을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관심 있는 분들, 박정희 대통령의 유산과 리더십에 대해 알고 싶은 분들, 보수의 가치를 역사 속에서 되짚고자 하는 분들, 트루스포럼의 시대적 사명과 방향성을 함께 나누고 싶은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일시: 2025년 1
*서울대 시진핑자료실 폐쇄 촉구 국민서명 서울대 시진핑자료실은 대한민국을 향한 중공 침투의 상징입니다. 서울대 시진핑 자료실이 중국공산당의 통일전선전술과 동북공정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시진핑 자료실을 존치하는 것은 서울대의 수치이고,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입니다. 공의 마수를 끊어내기 위해! 사랑하는 대한민국을 위해! 시진핑자료실의 폐쇄, 끝까지 함께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번호로 전화하시면 자동으로 서명이 완성됩니다. 꼭 동참해 주십시오! - 전화서명 - 1844-0815
45세 탈북민 지현아 작가님이 북한에 있는 고향 친구가 굶어 죽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페북에 공유했다. 점진적 개혁이 보수주의의 전부인줄 착각하는 사람들에 있다. 하지만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진리의 가치가 처참히 짖밟힐 때, 보수주의자는 누구보다 적극적인 혁명가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주의 혁명은 가능하다. 휴전협정 체결일에 이승만 대통령이 약속하신 것 처럼, 북한을 해방하는 보수주의 혁명은 반드시 이뤄야할 우리 민족의 사명이다. 북한이 해방 되는 날, 3.1운동으로 싹을 틔우며 태동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 혁명과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혁명으로 열매를 맺은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혁명은, 마침내 완수될 것이다. 그리고 같은 견지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북한과 중공에 잠식당한 민주당의 만행을 끊어내고 중공의 노골적인 침투에 대응하기 위해 감행한 고육지책이었던 뜬금 없었던 계엄도, 역사의 무대 위에서 다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실제로 나치를 닮아가고 있다. 이를 저지할 대한민국의 보수주의 혁명은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해 지금 당장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이진숙 위원장 체포. 이들의 경악스런 폭주엔 이유가 있다. 문재인 시절, 극좌 진영에서는 문재인을 비난했다. 과감하게 밀어붙이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적폐청산의 혁명을 그르쳤다는게 이유다. 이재명이 빛의 혁명을 말하는 건, 신속하고 과감한 혁명을 약속한 것이다. 검찰청을 해체하고, 경찰을 부상시킨 민주당과 이재명. 경찰은 권력의 개를 자처한다. 하지만 저들의 폭주가, 결국 스스로를 무덤으로 끌고갈 것이다. 로베스피에르가 1년 만에, 자신이 만든 단두대에서 죽었다는 걸 기억하길 바란다.
국군은 북진하라! 인천상륙작전의 원래 목적은 38선 회복이었습니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고 국군과 연합군은 28일 서울을 수복합니다. 하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여기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공산 압제 가운데 고통 받는 북한 주민들을 해방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는 9월 30일, 국군의 북진을 명령합니다. 그리고 10월 1일 새벽 5시, 국군은 강원도 양양에서 38선을 돌파했습니다. 10월 7일, 유엔은 총회 결의를 통해 이를 승인하고 지지했습니다.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북진은 10월 9일 부터 시작됩니다. 10월 19일, 국군은 미군과 함께 평양에 입성했고, 26일에는 두만강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11월 1일, 압록강에 접근하는 미8군을 향해 중공군의 대반격이 시작되면서 전쟁은 장기화되었습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북한 주민들을 해방하려던 이승만 대통령의 간절한 소망은 멈출 수 밖에 없었습니다.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날, 이승만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에게 애달픈 마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해방이라는 우리 민족의 사명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언젠간 완수될 것임을 약속하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