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5회 트루스포럼 강연] 나의 사상 편력기-민경우(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 딕테이션


 

 

 

<나의 사상 편력기> Dictation

2024.03.25  트루스포럼 강연 _민경우(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사무처장) 

 

 

Opening


김은구:  안녕하세요 트루스포럼의 김은구 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오늘 비도 오고 아직은 7시가 많이 어둡네요. 어두운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현장 강연에 함께해 주신 한 분 한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뭐라고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거짓말이 '대한민국은 친일파가 미국에 빌붙어 세운 부정한 나라다' 이 거짓말이라 생각합니다. 이 거짓말에 빠지게 되면 대한민국의 건국과 놀라운 경제 발전이 기적이고 축복이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망각하게 됩니다그래서 이게 참 위험한 거짓말 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거짓말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을 '남한 단독 선거를 한 민족 분단의 원흉이다' 이렇게 비난을 합니다. 결과적으로는 북한의 민족적 정당성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 민경우 대표님을 모셨는데, 젊은 시절 서울대 다니실 때 이런 잘못된 생각에 빠지셔서 방에서 김일성 충성 맹세까지 하셨죠. 여러분들께서는 들으시면 상당히 이상해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민경우 대표님 같은 분들은 그 당시 그게 자신의 열정을 담은 신념이었기 때문에 그 신념을 위해 4년 가까운 시간을 투옥까지 하셨습니다그런데 사회생활을 하시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뀌셨고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운동권이 나라 망치는 것을 막아야 되겠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셨습니다오늘은 민경우 대표님의 사고의 과정이 어떻게 변해 오셨는지 그 과정들을 저희가 구체적으로 들어보는 시간으로 진행이 될 예정입니다저도 개인적으로 참 궁금합니다. 민경우 대표님께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여러분들도 궁금하시죠큰 박수로 민경우 대표님 앞으로 모시겠습니다!
 


어린시절 소개


민경우:  반갑습니다. 무슨 얘기를 해야 할까 하다가, 주제도 넓게 주셨고 제가 살아온 여정을 쭉 소개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1965년생이고 저희 아버지가 황해도 평산군이시고 어머니가 평안도 분이셨어요. 1.4후퇴 때 내려오셔서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하셨는데 돈을 좀 많이 버셨어요. 그래서 경제적으로는 어렵지 않게 살았는데 문제는 굉장히 짠돌이셨어요. 그래서 겨울에 불을 안 때서 방에 얼음이 얼고 그랬어요. 그런 기억 때문에 저한텐 두 가지 생각이 있었는데 '우리 집안은 경제적으로 굉장히 유복한데 동시에 굉장히 가난하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의 이런 어린 시절 경험을 소개하는 이유는 데모했던 제 친구들 중에는 촌놈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같은 경험을 소개할 것 입니다.' 카레,탕수육' 이건 뭐냐 하면 2학년 때 제가 어느 부잣집에 가서 카레와 탕수육 먹었는데, 그런 기억이 지금도 있어요. '나는 굉장히 가난한 집안이구나' 그리고 부자들에 대한 선망도 있지만 한편으로 '쟤네들은 뭐가 문제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그 다음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혹시 기억나시나요제가 중3, 1 때 사운드오브뮤직을 봤는데 오스트리아에서 아주 평온하고 유복하게 잘 자란 아이들이 노는 걸 제가 중3 겨울방학 때 일곱 번 정도봤습니다역시 그것도 (제가) 굉장히 가난한 이미지를 갖고 살았는데 부유한 집안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그냥 6백만 불의 사나이 써봤어요. 기억나시죠? 아닌디끼 그러시면 안 됩니다. 곤란합니다. (웃음) 이게 80년대 초반에 대학가에서 충돌합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저는 비록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제 운동권 동료들은 60년대에 전라도 깡촌,부산, 경상도 깡촌, 충청도에서 태어났어요. 얘네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때 전주 대구 이 정도 올라와서 서울에 대학을 탁 들어온 거예요. 느낌이 오시나요제가 서울대 캠퍼스를 처음 딱 들어왔는데, 이게 어마무시한 캠퍼스잖아요학교 안에 차가 막 다니는데 너무너무 황량하고 너무너무 서늘하고 뭔가 이렇게 낯선 곳에 온 듯한 느낌이었어요그 어떤 이중적인 감정이 문제를 일으킵니다.

 

 

3S
 

'3S'라는 게 섹스, 스크린, 스포츠라는 건데, 스포츠는 프로야구 개막했던 거.. (여러분) 저랑 그렇게 나이 차이 많이 나지 않으십니다. 고개를 끄덕이셔야 됩니다. (웃음) 웃자고 하는 소리입니다.

스크린은 영화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엠마뉘엘 시리즈라고 있었습니다. 야한 영화 보려고 엠마뉴엘 시리즈를 본 건데, 그게 태국을 무대로 해서 실비아 크레스텔이 (연기) 하는 걸 보면서 뭔가 모르게 굉장히 매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섹스죠. 다시 한 번 얘기하자면 당시 한국 자본주의가 팽창하는 시작에 있었잖아요. 그 이후로 굉장히 살기 좋게 됐는데, 학생들은 '3S', 섹스 스크린 스포츠를 뭐라고 받아들였냐면 퇴폐적인 문화로 받아들입니다. '전두환이 우리를 현혹 시키기 위해 저 따위 자본주의 덜 떨어진 문화를 유포한다' 이렇게 생각을 했고 이게 주사파의 창시자인 김영환의 회고록에 있습니다.

김영환은 호메이니 혁명,이란 혁명을 찬양했고 두 번째로는 열차를 타고 가는 대학생들이 기타를 치고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김영환은 초등학생 때 '미국의 타락한 유행가에 맞춰 몸을 뒤트는 행위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한국의 대학생들이 문제다.' 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감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학생들이 결정적으로 오버를 합니다. 이게 문제인데,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하는거니깐 당연히 영국과 미국 또는 프랑스를 모범으로 삼아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영국, 자유주의,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해서 단 한 글자도 배워본 일이 없습니다대학 84,85 86학번들은 뭘 배웠냐 하면 독일 프랑스도 적당히 넘어갔고 대부분 소련 교과서 갖고 배웠습니다. 소련 공산당 아카데미라는 소련 교과서였습니다. 1984, 85년은 그게 교과서였고, 86년엔 거기서 한 발 더 나가서 오버합니다.

 

 

주사파의 등장과 확산_사상운동
 

이른바 주사파가 등장합니다. 86년에 주사파가 서울대에서 등장을 하는데, 당시 제가 3학년이었거든요. 저는 주사파가 뭔지 지금도 잘 모릅니다. 그런데 선배들이 주사파 주사파 그러니까 저도 그냥 주사파가 됐는데, 여기서 하나만 더 소개하자면 학생들이 이제 두 가지를 하는 거예요. 실재로 전두환 반독재 투쟁을 했거든요? 전두환 반독재 투쟁 하는게 하나 있는데 그거와 동시에 '사상운동'이라고 역사 바로잡기를 합니다.

 

사실 이게 한국을 망쳐 먹은 건데, 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어?" 그러면 우리 아버지는 또는 대중적으로는 "미군이 세웠어" 그러셨어요저희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즈음, 저를 좀 데리고 다니셨어요. 저도 이제 효도하느라고 같이 술도 먹고 돌아다니고 이럴 때 제가 아버지께 간혹 이런 질문을 했는데 "아빠, 해방 정국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지도자가 누구야?" 그러면 누구라고 얘기하겠습니까? 저는 잘 모릅니다. 우리 아버지는 여운형이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그랬나 봐요. 두 번째는 "아빠, 인민군,미군 그리고 중공군 중에서 제일 못된 놈들이 누구야?" 그러면 우리 아버지는 일본 헌병이 그렇게 무서웠답니다. 그리고 미군이 여자만 보면 환장했다 그러더라고요그 다음에 "아빠 그러면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어?"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이 맞는데 우리 아버지의 감각으로는 누구겠습니까? 어떤 나라의 주인이라는 건 싸움 제일 잘하는 사람이 대빵이잖아요. 싸움을 누가 제일 잘하냐면 미군이 제일 잘하잖아요. 결국 공산주의의 침략을 미군이 막아낸 거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아버지의 시각에선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어?" 그러면 "미군이 세웠어" 그렇게 대답을 하셨어요.
 

그런데 문익환 목사를 비롯한 70년대 후반의 반 체제 지식인들, 이런 사람들이 이제껏 대한민국 국민들이 생각해 본 일이 없는 이상한 생각을 만들어내기 시작합니다."대한민국을 누가 세웠어?" 그럼 미군이라고 얘기하는 게 당연한 얘기였는데 70년대 말 "대한민국을 누가 세웠어?" 라고 물으면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친일파가 세웠어." 이겁니다.
 


민족 투쟁과 반일의 결합
 

그 당시로 보면 이단적인 생각인데 이게 일본에 대한 반일 감정과 맞물려서 쭉 퍼져나가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게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이렇게 활개치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생각치 못했습니다그게 뭐랑 연결되냐 하면, 전두환 반대 투쟁을 하는데 "전두환 나쁜 놈" 이런 거 하고 "전두환 니네 이 새끼들 뿌리 뿌리, 뿌리, 뿌리, 뿌리를 파헤치면 알고 봤더니 친일파의 후예지?" 이런 거 하고는 투쟁의 강도가 달라지겠죠.
 

민족해방 투쟁은 아주 강력한 힘을 발휘합니다. 알고 봤더니 ', 전두환을 반대하는 투쟁이 반 독재 투쟁이 아니라 친일파의 후예를 척결하는 투쟁이구나, 민족 해방 투쟁이구나' 이렇게 들어간 겁니다. 됐죠?  "그래, 그럼 남한은 친일파가 세웠다 쳐. 그럼 북한은 누가 세운건데?" 이게 80년대 초반 대학생들의 최대 화두입니다.

 


친일파 남한, 항일무장투쟁 북한? _ 이승만 격하 운동


북한 김일성이 했던 조그만 투쟁에 보천보 전투라고 그런 게 있었어요. “북한은 항일 무장 투쟁을 했던 사람들이 세웠기 때문에 남한보다 북한이 정통성이 있어. 그리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해야 돼이게 주사파입니다. 그런 견지에서 보면 지금도 이런 생각하는 사람들 많잖아요. 주사파가 가장 성공한 이데올로기가 남한은 친일파가 세웠고 북한은 항일무장투쟁 세력이 세웠어. 그러니까 북한 주도의 통일 운동을 해야 돼 이거고, 여기서 파생된게 '이승만 격하 운동'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더 대빵이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하기 위해서 누구를 깔아 뭉개야 하냐면 이승만을 깔아뭉개야 하잖아요. 이해되시죠? 남한이 잘못됐으니까 남한의 초대 대통령도 잘못된 거죠. 이승만 격하 운동을 시작합니다주사파 운동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이 최대 이렇게까지 잘 먹힐 줄은 몰랐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주사파는 이승만을 격하시키는 선전 선동을 아주 잘합니다. 이승만을 격하시키는 단적인 방법은 이승만의 라이벌를 띄우는 것입니다. 이승만의 라이벌을 띄우면 자연스럽게 이승만은 격하되지 않습니까? 이승만의 라이벌이 누구냐 하면 김구입니다. 1948년 봄에 혈투가 벌어지죠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할 건데, 정부를 어떻게 수립할 거야? 미소 냉전 체제 때문에 도저히 남북 전체를 포괄하는 통일 정부를 수립할 수는 없으니 남한만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갖는 단독 정부를 수립하자 이게 이승만이죠. (반대로) 단독 정부, 단독 선거를 하면 안 되니까 김일성하고 합작을 해서라도 통일정부를 수립해야 해. 이게 김구의 노선이지 않습니까이승만을 격하시키기 위해서는 김구가 옳은게 되어야 하잖아요. 김구가 옳았다고 부각을 시켜야 죠. 제가 볼 때 세계사 교과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1792년 프랑스 인권선언을 중심으로 구성된 겁니다. 그 다음에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겁니다.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데 구차한 생애를 구하지 않겠다.' 김구가 북한을 갈 때 했던 그 말입니다. 이걸 중심으로 구성된 겁니다그게 1980년대 후반에 저희들이 했던 건데 지금 그대로 40년 지나서 대한민국 국사 교과서에 그대로 들어가 있습니다. 주사파에 의해 이렇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86 87년에 그렇게 됐죠. 이게 주사파입니다.

 

 

북한주도 통일=주사파

제가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주사파' (라는 단어)에는 많은 것 은폐돼 있습니다그러니까 아까 김일성 충성맹세 이런 얘기도 하셨지만 주사파를 '김일성의 충성 맹세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자' 그러면 사실은 몇 명 없어요. 근데 주사파가 위력적이었던 건 (방금 말한) 이게 주사파에요. '남한은 친일파가 세웠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해야 된다, 북한이 더 우월하다'라고 보는 사상, 이게 주사파입니다그리고 그거에 파생돼서 이승만과 김구 중에서 김구를, 이승만을 격하하는 것도 아니에요, 김구 김구 김구 그러는 거예요. 버젓이 초대 대통령, 국부가 있는데도 "김구가 국부야" 뭐 이렇게 해서 세상이 그렇게 된 거죠이게 주사파가 된 과정입니다.
 


사회주의의 몰락을 지켜보며


솔직히 얘기하면 제가 인생을 후회할 때가 있는데요, 여기서 끝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87년에 87년에 제가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열심히 싸웠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직선제가 됐는데 여기까지는 학생운동의 긍정적 기여라고 생각하는데 이 동의 되시나요? 받아들여 주시나요? 87 6월 항쟁 때 제가 4학년이었으니까 김영삼 김대중하고 같이 1년 내내 해서 어쨌든 직선제가 되는 건 옳은 것이잖아요. 대통령 직선제가 된 건 옳은 건데 거기까지 하고 끝냈어야 되는데 끝나고 나서 너무 큰 일이 있었어요.

 

기억을 한번 되살려 보시면 88 9월달에 올림픽 있었죠? 89년 봄에 큰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은연중에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있었으니까 '저게 뭐지?' 라고 했던게 '천안문 사태'입니다천안문 사태 때 6 4일날 천안문 광장에 중국 학생들이 막 모여 있으니까 탱크로 그냥 밟아버리잖아요. 근데 우리는 사회주의를 좋은 거라고 배웠는데 '저게 뭐야?' 이렇게 된 거고 89 7 1, 또 경천동지할 일이 벌어지죠. 임수경 학생이 북한을 가잖아요. 근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희 아버지랑 TV를 같이 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저 죽일년 이러시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 89 10월에 베를린 장벽 무너진 거 기억나시나요? 그 다음에 90년은 좀 조용했는데 91년도 12월에 소련이 해체되잖아요. 이게 88, 89, 90, 91 불과 4년 만에 (일어난 일이에요). 학생들은 뭘 했다고요? 소련 공산당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었어요. 근데 소련이 붕괴된 거예요. 그러니까 완전히 멘붕 상태잖아요. 정상적이면 생각을 바꿨어야 되는데 지금부터 어떤 일이 벌어졌는 소개하겠습니다.
 


조희연
 

여러분, 이름만 대면 아시는 유명한 사람입니다이 사람이 소련이 붕괴된 상태에서 글을 썼는데 뭐라고 쓰냐 하면 이렇게 썼습니다. 길어서 빨간 글씨만 읽으면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고 해방된 사회에 대한 과학적 시도를 행하였던 마르크스의 분석 방법론과 그러한 사회를 혁명적으로 극복하면서 단적으로 달성하려 했던 레닌적 정신을 일치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과제이다. 사회주의는 인류의 오랜 이상은 -" 이게 사회주의를 흠모할 때 쓴 글이 아니라니까요. 사회주의가 망했어요. 레닌 동상이 밧줄에 내려온 상태에서 쓴 글입니다.
 

이 사람이 누굴까요? 조희연(서울시 교육감) 입니다. 조희연 이 아저씨가 (쓴 글에) 레닌을 칭송하는 글이 넘쳐납니다. 대부분 운동권들은 글을 숨어서 쓰기 때문에 아직 잘 남겨진 게 없는데 조희연 씨는 글을 많이 썼기 때문에 레닌을 칭송하는 글이 무진장 많습니다.
 

제가 지금 이걸 소개해 드리는 건 왜냐 하면 이렇게 레닌을 칭송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뭐가 됐냐 하면 '참여연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참여연대는 레닌과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챠베스를 칭찬하다가 교육감이 됩니다.
이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전부 다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소련이 망했어도 소련 교과서를 갖고 공부했던 사람 중에는 '내가 틀렸어'라고 하는 사람은 3%밖에 안 됩니다. 지금 현직에 있는 사람들 거의 100% 그렇습니다.

 

 

최영미 글 (서른잔치)


그 다음 두 번째, 이거 나중에 소개해 드리면 더 많은데 우선 조금만 가져왔습니다제가 볼 때는 386의 가장 위대한 작품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나중에 훗날 386 운동권의 역사를 쓸 때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기록될 거라 생각합니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81학번 최영미 씨의 글입니다.

 

 

'나는 물론 서른 잔치는 끝났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도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라고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 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떠세요? 이게 맞죠? 저랑 감정 상태가 똑같잖아요. 저는 지금에서야 느끼는 건데, 80년 광주사태 때부터 시작됐던 운동권의 사회주의 어쩌고 저쩌고, 주사파 어쩌고 저쩌고가 틀린 얘기잖아요. 어른들이 얘기했던 것처럼 한때 그냥 그런 거잖아요. 그러니까 최영미 씨는 아주 간결하게 '서른 잔치는 끝났어. 이제 제 자리로 돌아와' 이렇게 된 건데 이 말보다 뭐가 더 유행을 끌었냐 하면 이게 주류입니다. 불행도. 최영미씨의 <서른잔치는 끝났다>가 있고 김우중 씨.. 대우그룹이 좀 문제가 있었는지 모르겠는데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거입니다.

 

 

위험한 바깥세상_ 제국주의


한국은 사실은 역동적인 세계 진출을 통해서 발전한 나라잖아요. 아주 웅장한 표현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반면에 운동권은 뭐냐면 '바깥 세상은 굉장히 위험한 거야. 쟤네들은 제국주의야. 그러니까 거기와는 단절하고 우리끼리 잘 살아보자' 이런 생각입니다. 세계는 넓은 게 아니라 세계는 위험하니까 세계에 저항해야 돼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건데 지금 김우중씨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저는 사실은 그 당시에 90년대 초반에도 제가 약간 많이 흔들렸던 워딩입니다. '그게 맞을 것 같은데..'
 

그 다음으로 한비야씨라고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이런건 출판사들이 정말 잘 하잖아요.' 세계로 대담하게 진출해서 자기의 이상과 어떤 꿈을 실현해라' 이런 그런 거였는데 이게 잘 안 통합니다.

 

그다음으로 제 개인적인 얘기를 소개해 드리자면, 사실 90년대 초반서부터 저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근데 전향을 언제 했냐면 2019년 봄에 했거든요. 90년대 초반서부터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으니깐 무려 20년에 걸쳐 전향한 겁니다. 죄송한데요, 전향 하는 게 텀이 긴 것 같아요.

 

 

미제의 식민지는 아니겠구나


전향의 계기를 몇 가지 소개하자면, 서태지와 아이들 기억하시나요? 어느 날 잠에서 깼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 춤을 추고 있는 거예요. 그 당시 남자들은 춤을 잘 안 췄거든요. 주사파 (사고방식으로는) '남한은 친일파가 세운 나라다. 그래서 식민지다. 식민지에서는 경제도 발전할 수 없고 인간이 어떤 풍요를 누리는건 사치에 지나지 않아.' 이런 것이에요. 그런데 소방차, 서태지와 아이들이 춤을 추는데 제가 그걸 가만히 보면서 '.. 저런 젊은 애들이 있는걸 보니깐 우리나라가 식민지는 아니구나. 불행히도 내가 틀렸구나' 딱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 생각을 바꿨어야 했는데 못 바꿨습니다.

또 하나가 룰라 김지현 씨가 노래를 부르는데 굉장히 육감적이잖아요. 그걸 보면서도 '야 저런 춤과 노래가 불려지는 나라가 미제의 식민지는 아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하나 아주 인상적이었던 칵테일 사랑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제가 감옥에 97년에 감옥에 갔는데 이영애씨가 나오는 대장금이라는 사극 드라마를 봤어요. 옛날 70년대 사극과 그 당시의 사극은 굉장히 달라요. 옛날 사극은 울고, 짜고 이랬던 분위기인데 대장금은 사극이긴 하지만 굉장히 풍요롭고 이런 느낌을 받았어요.


결론적으로 뭐냐면 나는 (남한이) 식민지라고 믿고 있었어요. 그리고 식민지라면 울고 짜고 궁핍하고 아무런 경제적 여유도 없고 이래야 하는데 보니까 90년대 한국 자본주의는 아주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어요제가 지금은 학원 수학 선생인데, 애들이 철마다 해외여행 다니고 그래요. 이 놈들 학원 원장은 못 다니는데 여름에는 동남아, 겨울에는 일본... 그래서 내가 이 놈들 때문에 수업을 할 수가 없어요. (웃음)


그 다음에 삼성전자 쇼크가 있습니다. 80년대 초반에 소니 기억하시죠? 저희는 어렸을 때부터 일본 영화, 일본 만화, 일본 기업에 대한 선망을 갖고 자랐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을 상징 하냐면 '우리는 독립은 됐지만 일본을 넘어설 수 없어. 그리고 일본의 재 침략 야욕, 일본이 또 다시 우리나라를 경제적으로 넘볼 거야' 이런 분위기 속에 살았거든요근데 2004년에 세리 보고서라는 게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연구 보고서인데, 그때 그 경제 통계를 보니까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일본의 전자 회사 전부를 합친 것보다 많아요. 그런 상태에서 일본의 경제적 침략 이런 얘기하는 게 웃기잖아요. 삼성전자가 매판 자본 이런 얘기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소리였죠.
 


미국에 대한 인식 변화 (스티브잡스)


(저의 경험을) 요약하자면 80년대엔 주사파였고요그 다음에 90년대 때는 서서히 생각을 바꾸긴 했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에 다시 격변이 시작됩니다제가 볼 땐 세 가지 점에서 격변이 시작됩니다.


첫째로 국제 정세입니다. 제가 결정적으로 반미에서 반미를 거두게 된 계기는 스티브 잡스로 인한 충격입니다. 2007 12월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출시합니다. 기억나시나요? 그때 스티브 잡스가 양복도 안 입고 티셔츠 차림으로 아이폰을 출시 프레젠테이션을 합니다.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폰을 소개하는데 양복 입고 거들먹거리는게 아니라 여유 있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그 다음 장면에 당시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 엔지니어들이 보였습니다. 같이 커피 한잔 딱 마시면서 그것을 즐깁니다. 멋있는 장면입니다. 스마트폰이 세상을 바꾼 거잖아요. 이거 없이 세상을 살 수 있나요? 지금 못 살잖아요기술적인 성과도 있지만 더 놀라운 건 미국에 대한 태도입니다. 아까 제가 촌놈들이 주사파가 됐다고 했지 않습니까? 촌놈들이 주사파, 반미를 하니깐 '미국 이 놈들 너네가 잘 살고 돈 많고 힘센 거 알겠지만 너네들 정신 문명은 우리보다 뒤떨어질 거야.' (라는 생각과 태도를 가집니다) 이게 위정척사 같은 거죠. 이해되시죠? 이게 모든 반미의 근원입니다.

이슬람 호메이니가 미국에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도 왜 반미을 하냐 하면 '미국 너네가 잘 살고 힘세긴 하겠지만 우리 이슬람주의는 너희보다 훨씬 영적으로 위대해.' 이런 사고 방식을 가지는 것이죠.

 

 

반미의 모순
 

근데 이제 '반미'가 안 되게 돼 버렸어요. 그러니까 '미국이 잘 살고, 힘 센건 물론이고, 쟤네들이 훨씬 개방적이고 자유롭고 혁신적이구나..' 이거 동의 되시죠? 그러니까 반미가 잘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2007년을 계기로 반미의 대중적 동력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니까 반미 운동하는 우리 후배들이 어떻게 반미 운동 하냐면 아이폰을 탁 들고 이러고 반미 운동을 해요. 이거 보셨나요? 그리고 미국제 신발을 신고... 반미를 하는 거야 친미를 하는 거야자기들도 아이폰이 굉장히 혁신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문물이라고 느끼는 거예요. 그러면서 반미를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스타벅스 가시죠? 믿기 힘드시겠지만 저희들은 스타벅스 안 가기 운동을 공식적으로 했었습니다. 코카콜라 안 먹기 운동 이런 걸 했습니다. 근데 오늘 아침에도 제가 스타벅스 다녀 왔어요사실 처음에 딱 들어갈 때는 뭔가 어색했어요. 어색하기도 하고 바보 같죠. 서울대 나온 60살 가까운 돈도 좀 있는 아저씨가 스타벅스를 가서 불편해 하는 감정을 갖고 있었다니까요. 그게 DNA에 박혔습니다. 지금은 스타벅스 편안하게 갑니다.

 

 

국제정세 전망
 

(아무튼) 2007년도에 반미의 대중적 지반이 무너졌어요. 다음으로 2010년도부터 미중 대치 국면이 시작됩니다. 2000년 이후 10년 간은 중국이 군사적,이념적으로 위협 세력은 아니었어요오히려 경제적으로 이용해 먹자 이런 분위기였는데, 2010년도 시진핑이 등장하면서 바뀌었죠. (국제 정세)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정황은 좀 무서워지고 있습니다.

 

미국)

한국이 2010년도부터 무서워지고 있는데 우선, 바이든하고 트럼프랑 누가 될까요? 11월 미국 대선이 지금 7~8개월 정도 남았는데 바이든이 되면 지금하고 비슷하겠죠. 근데 트럼프가 되면 한반도는 어떻게 될까요? 작년 11월에 나온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해버리고 북미 수교를 하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이런 시나리오들이 있습니다. 저는 감당 못 하겠습니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한국은 핵을 가져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가져야 되죠? 가져야 하나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나마 상대적으로 완만하던 한국의 (안보) 분위기가 11월을 기점으로 급속하게 바뀌겠죠. 동의 되시나요?

 

러시아)
두 번째는 중국과 러시아 푸틴입니다. 저는 최근에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우세를 거두고 있잖아요. 이 놈들이 그걸로 끝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몰도바까지..(넘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크롱이 프랑스군 2천 명을 참전하니 마니, 독일의 핵무장..이렇게까지 이어져요그리고 IS가 푸틴 극장을 테러해서 130명 정도가 죽었는데 이거 어떻게 될 것 같으세요? 이거 장난 아닌데..


또 제가 볼 때 한반도 관련해서 굉장히 위험한건 러시아와 북한의 기술 협력입니다. 북한의 포탄이 러시아로 들어가거든요. 러시아에 군수물자가 없으니까 북한제가 들어가는데, 들어가면 뭔가 대가가 있겠죠? 대가로 식량 정도만 주면 괜찮은데 군사 협력이 대가로 갈 가능성이 있어요. 북한은 마지막 키를 갖고 있어요. ICBM을 쏘면 마지막 재진입 기술이 없는 걸로 돼 있잖아요. 이거 러시아가 줄 수도 있나요? 잠수함에서 쏘는 SLBM도 줄 수 있죠. 러시아와 관련해서는 완전히 폭풍 전야입니다.

 

중국-대만)
다음은 중국인데요, 미국 인도 태평양 사령관의 공식 보고에 따르면 중국이 2027년에 대만을 친다고 했습니다. 미국 인도 태평양 사령관의 보고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든 말든 우리는 그냥 셰셰하고 있자 이렇게 되겠죠. 여기까지 중국-대만의 상태입니다.

 

중국-북한)
다음으로 북한과 중국과 관련한 YTN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은 북한을 굉장한 위협 요인으로 보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북한이 미국의 대중 압박에 대한 방파제로 보기도 하지만 우한거리로도 보는 거잖아요. 그래서 '중국이 북한을 선제로 쳐서 위험 요인을 제거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보기도 한답니다. 최근 제가 국제 정세를 안 보는 사이에 완전히 이렇게 됐습니다.

 

북한)
다음은 북한 후계설도 있습니다. 북한은 핵무장과 동시에 후계 체제입니다. 이것도 뉴스에서 본 건데요, 김정은의 건강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몇 살 되지도 않는 여자아이 김주애를 완전히 후계 체제 작업에 들어갔잖아요. 그건 김정은의 건강이 좋지 않고 몇 년 사이에 무언가 문제가 터질 수 있다라는 건데, 지금이 2024년이니까 제가 얘기했던게 4~5년 사이에 이렇게 슬슬 다 겹치지 않나요?

 


한미동맹 강화 강조


제가 결과적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 이유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것이 상황이 어떠하든지 간에 무진장 중요하겠구나' 생각을 했습니다제가 과거에 명색이 범민족연합 사무처장이었습니다. 한국 주사파를 상징하는 조직의 대빵이었습니다. 그런데 민경우가 한미동맹 지상주의자가 됐다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후배들이 저 새끼 어디 저기까지 가나 이렇게 됐습니다. 이건 어쩔 수 없어요. 한미 동맹을 강화하지 않으면 사태를 수습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작년에 한미일 군사 동맹을 강화하는 일련의 작업을 보고 '저거 하나 됐다, 내가 당신을 지지하는 이유로서 충분하다' 이렇게까지 정리를 했습니다.

 

김구 재인식


두 번째는 아까 얘기했던 이승만에 대한 재평가입니다. DNA가 있어요. 나는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한 번 어딘가에 빠지면 그게 오래 갑니다내가 20년에 걸쳐 전향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습니다. 우리(주사파) DNA 안에 있는 건 김구입니다. 48년 봄에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데 구차한 생을 바치지 않겠다" 이 말이 주사파 어록같이 돼 있었는데 '이게 틀렸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40년대 후반 한반도 질서에선 남북을 포괄하는 민족 통일,민족 정부의 수립은 불가능했구나'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게 바람직하지도 않았구나' '그래서 이승만의 정부 수립 방침이 옳았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너무 순진한 얘기인가요?
 


미중 사이 등거리 외교


제 친구들은 생각보다 이런 생각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미중 등거리 외교' 그러니까 친중 성향이 있긴 한데 미중 대치 국면에선 차마 중국이 옳다라고는 얘기 못합니다. 그러나 '항상 미중 사이에 등거리에 있어야 된다.', '그리고 어느 한 편에 붙으면 안 된다'라는게 운동권의 철칙입니다.

 

 

반일의 모순


그다음에 스티브 잡스 충격으로 반미는 사라졌어요. 반미 주장하는 세력은 잘 못 버팁니다. 신문에서도 보셨겠지만 전지의 정영의, 후보들이 반미 집회 한 번 한 걸 가지고 공세를 펴니까 후보직에서 사퇴하잖아요. 반미는 잘 안 통하니까 반일을 합니다반일도 웃기는 반일이에요. 학원에서 일하다 보면 웃기는 애들 많아요. 제트스트림이라고 볼펜 있잖아요, 학원에서 일본제 볼펜을 쓰는데, 어린 애들도 일본제 볼펜 다 씁니다. 그런데 중3 학생이 저한테 와서 "선생님, 대한민국 모든 악의 근원은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라고 합니다. "야 네가 쓰는 볼펜이 어느 나라 건지 알아?" (웃음) 두 번째는 한국은 친일파가 세웠답니다. "야 어제 너 일본 여행 갔다 왔잖아" (웃음) 이러고 있는거에요. 완전히 골 때리는 겁니다.
 


조국혁신당의 위험성


제가 볼 때 조국과 조국 혁신당이 향후에 생각보다 큰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러냐면 조국과 조국 신당이 지금 선거에서 문제를 일으키는데요, 원래 민주당 지지율은 40% 정도밖에 안 돼요. 그런데 대통령의 부정 평가와 정권 심판론이 한 60% 됩니다. 이해되시죠? 그리고 민주당 공천 파동이 있었잖아요. 20%는 공천 파동이 있는 조건에서 자기네들도 쪽팔리니깐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말을 못하고 있었던거죠. 이해가 되죠? 근데 조국이 딱 나타나니까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20%가 쫙 빨려 들어갑니다. 제 주변에 굉장히 많습니다.

옛날에 운동권이었고 연봉이 1억쯤 되는 친구들이 다시 혁명을 하겠다고 날뛰고 있습니다. 그리고 얘네들이 쭉 밀고 올라오니까 어떻게 됐냐 하면 비례 지지도를 가만히 보면 지금 조국 혁신당이 30%까지 올라왔습니다. 민주당이 19% 정도거든요. 이게 50%입니다. 정권 심판론과 거의 유사하잖아요.

 


민주주의의 기준은 소련

 

이제 소개할 건데 제가 생각을 바꾸게 된 주요 계기 중 하나가 포퓰리즘입니다. 80년대 중후반의 학생운동은 보수 측에서 하는 이 말이 맞습니다. "니네들 민주주의 운동한 거 아니잖아" 아까도 얘기했지만 우리는 영미형 자유주의, 영미형 민주주의를 한 번도 공부한 바, 주장한 바 없습니다. 선배님들이 저를 가르치실 때 영미에 대해서는 단 한 글자도 얘기하지 않으셨어요. 사회주의형 민주주의, 소련이 교과서였어요.


사회주의 민주주의 / 영미 민주주의 차이


소련, 사회주의형 민주주의와 영미형 민주주의랑 어떤 차이가 있냐면 첫째는 역사의 주체가 인민, 민중, 프로레타리아입니다. 자본주의, 영미형 자유주의의 핵심은 주로 창의적 개인, 기업가, 지식인 이런 거예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두 번째, 여기(소련식)는 권력투쟁에서 지면 상대방을 죽이는 겁니다. 배제하는 겁니다. 프롤레타리아 독재 이런거에요. 반대로 영미형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지면 '그다음 선거에선 너네들이 잘 해서 이겨' 이렇게 되는 거죠. 이런 차이가 있었어요. 그래서 운동권 민주주의는 서서히 약화됐는데 문제가 시작됐습니다.

 

 

좌파 혁명 시도


어디서 문제가 시작됐냐면 제가 전향하게 된 계기인데 효순이 미선이 싸움이 있었습니다. 2002년 월드컵 때 기억하시나요? 수 백만 명이 거리로 나왔잖아요. 그해 겨울 효순이 미선이 살려내라고 경기 동부가 막판에 노무현 정권이 수립할 때 서울 광화문을 접수해버립니다.

 

2002년도 이게 효순이 미선의 싸움입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투쟁이 있었죠.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하니까 그때 수 십만 명이 거리에 나와서 탄핵을 무산 시켰잖아요. 그다음에 2008년 광우병 촛불이 있었죠? 광우병 촛불 기억나시나요? 광우병 촛불 때 제가 한미 FTA 범국변 정책팀장이었습니다. 서울을 아수라장으로 만든 주역 중에 한 사람입니다. 저를 띄엄띄엄 보시면 안 되겠습니다.


그다음 2014년이죠. 세월호 싸움이 있었고요, 2016년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있었죠. 근데 저는 이 구호가 굉장히 이상했어요. 첫 번째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구호가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게 맞죠?  대한민국 헌법에 그렇게 돼 있습니다.
 


이어지는 혁명의식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니깐 거리 항쟁, 촛불 혁명을 통해서 이 세상의 모든 기득권 세력을 쓸어버리죠. 이게 촛불을 관통했던 정신입니다. 이 땅의 주인은 민중이고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이 거리에서 수 백만명이 나와서 기득권자를 쓸어버리자고 하는 걸 포퓰리즘이라고 합니다. 민주주의와는 좀 다릅니다. 이 세력이 문재인을 세웠고요, 문재인을 세우고 나서 제 친구가 쫄래쫄래 저를 찾아왔습니다. 연봉 1억짜리 친구입니다. "경우야, 87 6월 항쟁 때 인문대 학생회장을 했던 민경우야, 우리가 이 세상 모든 것을 쓸어버리려고 혁명을 했는데 이놈의 문재인 정권이 티멍하게 우리의 약속을 저버리고 우리를 배반했다. 이재명을 앞장 세워 혁명을 다시 하자"


근데 이재명 세력이 현재 민주당 공천으로 복잡 해지니까 "이번에는 조국을 앞장 세워 미적거리지 말고 검찰 독재를 조기에 끝장 내자, 지금 바로 척결하자. 이걸 계기로 우리 앞을 가로막는 모든 세력을 제거하자" 이렇게 된 거죠. 이렇게 점점 급진적 흐름으로 가고 있습니다.



급진개혁


다수의 민중이 거리 항쟁을 통해서 기득권 정치를 완전히 쓸어내고 새로운 세상을 올린다.' 제가 믿었던 민주주의이거든요. 이게 80년대 중반에 학생들이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얘기했던 거고요, 2000년 효순이 미선이부터 시작해서 20년 동안 촛불 혁명이라고 불렀던 이름이고, 총선 마지막 국면에 현재 조국 혁신당이 내걸고 있는 구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게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전향 결심

 

마지막으로 저의 전향을 소개하자면, 저는 촛불 집회를 보면서 굉장히 불편했어요. 이렇게 가는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반일 퍼레이드, 암살 같은 영화를 보고 너무 불편했어요.

2019년도 봄, 조국 사태가 있기 전에 저는 주사파에선 이름 좀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너네들하고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기 위해 일부러 전향을 했습니다. 사실 전향을 지금도 안 하는 게 저는 살기가 편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후배들이 막 뭐라 그래요. 가만두지 않겠다 그런 놈들도 있고.. 한 번은 선배가 12시에 전화 해 가지고 막 울어요. "야 너 전향까지는 좀 심하지 않았냐" 그런데 그건 뭐..자의로 전향을 하고 나의 정치적 신념이 그렇지 않다는 거를 후배들한테 좀 확인 시켜줄 필요가 있어서 2019년 봄에 전향을 했어요.

 

 

전향 절차


전향은 어떻게 하는 거냐 하면, 보통 사람들은 전향 대상이 아닙니다. 저는 국가보안법으로 형량이 꽤 세기 때문에 경찰 검찰의 지휘 아래 파출소에 경찰관과 대면 심문을 해요. "국가보안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대한민국을 동의하는가" 등 지금 나온 얘기를 그대로 써서 도장 찍고 검찰한테 보내면 전향이 완성되는 겁니다.

 

 

전향해서 좋은 점

 

전향을 하게 되면 어떤 이득이 있냐 하면 전향을 안 하면 한 달에 한번씩 경찰관들이 오세요. 그래서 뭐 할 얘기는 없으니까 제가 커피 얻어먹고 '기왕 오신 거 좀 비싼 거 사요..' '  (이렇게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10년 이상을 그렇게 했는데 그게 면제되는 거예요. 그리고 해외여행을 갈 때 검사의 동의를 받아야 되거든요. 불행히도 제가 해외여행을 대만 한번 가봤습니다. 왜냐하면 운동권들이 볼 때 '해외여행 가기 위한 검찰의 동의서는 굴욕적인 거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운동권 정서로. 그리고 운전면허를 최근에 땄어요. 왜냐하면 수배 생활을 하니까 운전면허장에 갈 수 없잖아요.
 


진실과 허위의 문제


만약 조국 사태가 없었으면 저는 그냥 조용히 수학 선생으로 살았을 것 같은데 2019 10월 조국 사태가 있었습니다. 근데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조국 같은 진보가 아니라 이낙연 정도 되는 진보였으면 제가 뭐라 얘기 안 했을 겁니다. 근데 조국보다 더 컸던 건 한명숙입니다. 한명숙 1억 원짜리 수표가 나오잖아요. 근데 끝까지 아니라고 발뺌을 하는 걸 보면서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불의, 진실과 허위의 문제다. 우리의 미래가 허위에 기초해서 그럴 수는 없는 거다'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제 일기장을 돌이켜보면 이 새끼들 가만두지 않겠다.' 제가 서울대에서 여기 연설을 한 번 하면서부터 사회 활동에 컴백을 했습니다.

 

 

나의 우파 활동 기조

 

컴백을 해서 쭉 그런 기조 위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하나는 한미동맹을 강화한다. 한미동맹을 강화해서 있을 수 있는 국제 질서의 위험 요인을 제거한다두 번째는 한국 민주주의는 인민민주주의가 아니라 의회 민주주의 이런 형태로 가야 된다. 세 번째는 시장 친화적인 경제질서를 구축해야 된다. 이런 기조에서 활동 지속했습니다


끝으로,  A당과 B당이 서로 주고 받는 게 민주주의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형태의 정권 교체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재명과 조국과 같은 시스템은 정상적인 민주주의의 공수를 바꾸는 형태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제가 볼 땐 악성 포퓰리즘, 새로운 변종 독재 체제라고 생각합니다. 할 수 없이 싸워야 되는데 이 나이 돼서 싸우려니 참 피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합니다.
 


정신적 전향 _루소 탈출
 

제가 우파가 됐다는 징표를 이걸 갖고 삼는데요, 이게 좀 철학적이어서 어떨지 모르겠습니다저는 루소를 신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마르크스나 루소 계열은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그 이성에 의해 뭐든지 할 수 있고 사회도 개조할 수 있다는 신념 체계입니다그리고 그 극점까지 있었던 게 주체사상입니다. 주체사상은 이렇게 돼 있습니다.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그것을 하는 것도 인간에게 있다.' 그러니까 인간이 세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는 거예요. 루소의 이성에 대한 무한 신뢰입니다. 인간의 완전성에 기초한 사회 개혁이 가능하다고 주장합니다거대한 사회 실험 및 비극의 근원, 이게 캄보디아 사태, 중국의 문화 대혁명 같은 게 다 여기서 비롯되는 겁니다. 운동권의 혁명도 이것이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인상 깊은 책_애드먼드 버크


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을 한 권 골라라 그러면 에드먼드 버크의 프랑스 혁명에 관한 고찰입니다.  "가족, 교회, 관습 이런 건 낡은 질서야. 그러니까 이거는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돼." 이게 프랑스 혁명의 사상인데 에드먼드 버크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야 그거 아니고 니네들이 낡은 질서, 봉건 질서라고 하는 그 제도 안에 인간의 지혜와 장점이 어느 정도 녹아 있어. 계승할 건 계승하고 바꿔야 할 것을 바꿔" 이게 점진적 개혁입니다. 저는 어릴 때 아까 얘기했던 촌놈들이 갖고 있는 부자들에 대한 원망 같은 게 있었어요. 그래서 인간과 사회를 쓸어버리는 로베스피에르와 같은 사람을 굉장히 좋아했어요근데 에드먼드 버크는 옛날부터 알긴 알았는데 나이가 들어서 이제야 이해가 됩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것. 저는 굉장히 오랫동안 유물론자로 살았는데 최근에 기독교하고 조금 타협하는 게 있습니다. 여기 기독교 많으시죠? 종교개혁이 완전한 신 앞에서 인간은 불완전하다 이렇게 보는 거잖아요. 인간의 불완전성이 동의가 되어야만  불완전한 인간끼리 타협이 가능 거죠. 대화와 타협이 있어야 민주주의 질서가 유지되는데, 인간을 완전하다고 보면 '나는 완전한데 저 놈은 적' 이렇게 되는 거죠그래서 저는 이 두 가지가 이해가 됐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의 종교 개혁,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사상이 왜 근대적이고 개혁적인가 라는 부분이 이해가 됐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파가 되었습니다저는 이제 보수파라고 생각하고 어디 가서도 그렇게 말하고 다닙니다.  내가 보수 우파가 된 증표가 이거 같습니다. '인간의 불안전성을 인정하고 그것에 의한 점진적 개혁에 동의하며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는 걸 수긍한다' 이게 우파의 징표라고 생각합니다괜히 기독교가 오래된 건 아니니까요. 

 

 

두 가지 감정 _싸움의 필요성


마지막으로, 사실 저는 두 가지 감정을 같이 갖고 있습니다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사회주의가 망하고 나서 생각을 바꾼 사람, 3%에 속합니다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꽤 많은 연봉을 받으면서 어렸을 때 그 혁명의 미망을 쫓아 사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호남 40~50, 조국 혁신당을 지지하는 그룹이 여기거든요이 양반들이 아마 한국 사회를 굉장히 이상한 방향으로 끌고 갈 거라 생각합니다. 이번 선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간에 민의에 대한 근본적인 배반이기 때문에 싸워야 하는 거죠. 어떤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그걸 동의하고 그걸 받아들여야 될 게 있습니다. 그러나 나치도 선거로 됐습니다. 선거로 됐다고 그걸 동의하나요? 싸워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40~50대 호남이 만들어 놓은 이 아수라장을 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사회 질서가 전향하지 않은 자들의 시스템으로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법원도 그래요. 군대도 그렇습니다. 저는 국정원에서도 가끔 강의를 하는데 민주파 물을 너무 많이 먹었어요. 사회의 중추가 이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첫 번째로 드리고 싶은 얘기는 40~50대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기 때문에 전향한 자들의 인생이 굉장히 고달픕니다두 번째는 우리가 옳잖아요. '내가 다시 한번 싸워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옳았는가? 제가 옳았다 (웃음) 1 99라도 내가 옳은 거야. 이런 겁니다.
 


사상적 기반이 약한 우파 / 반 체제 지식인의 장악
 

우리나라 주류 사회는 미국적 전통이잖아요. 근데 불행히도 미국의 하드웨어, 기술은 받아들였지만 정신 세계는 좀 약했던 것 같아요그래서 반 체제 지식인들은 독일과 프랑스 전통을 공부했죠루소,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 폭력으로라도 실현한다 이런 것이 프랑스 혁명의 전통이죠. 프랑스 혁명의 전통을 은연 중에 갖고 80년대에 소련 교과서로 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저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배울 때 자코뱅, 로베스피에르 이런 쪽으로 강한 호감을 갖고 레닌 주체사상 이렇게 간 걸로 생각 듭니다.



Q&A

김은구: 인생을 돌아보는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민경우 선배님의 지난 30, 40년이 담긴 강의를 오늘 해주신 것 같습니다귀한 강의를 해주셨는데요, 우선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게 조국이 지금 또 다른 혁명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막아야 된다. 이건 변형된 독재 시스템이고 악성 포퓰리즘이다 이런 말씀을 해주셨는데 여기에 대해서 또 민경우 대표님께서 앞으로 또 적극적으로 싸워주셔야 할 텐데, 우선 이 부분 잘 부탁드린다는 감사의 박수 먼저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지금부터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궁금하신 거 있으시면 손을 들어 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Q. 586 세대들이 이전에는 전대협을 통해서 반국가 정치 세력들을 길러냈다면 지금은 어떻게 정예 부대, 후대를 키우고 있나요?


민경우:  지금 후대에서 가장 위험한 게 교육과 문화입니다. 옛날처럼 대규모의 서클 조직화, 의식화는 그렇게 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근데 어떻게 보면 더 대규모로 교육과 문화, 특히 영화로 의식화를 시키고 있죠.
 


Q. 좌익 진영에서도 사회 운동을 하셨고 우파 진영에서도 사회 운동을 하셨는데, 각 진영에서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파 진영이 계속해서 밀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경우: 첫 번째 사회운동의 숫자 규모가 비교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 9 1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좌파가 9입니다두 번째는 활동 연령대에서 현저한 차이가 납니다. 우파 진영은 60~70대고 좌파진영은 40~50대입니다세 번째 경험의 차이가 큽니다. 좌파가 어느 정도로 정치 경험을 수행하는가를 잘 못 느끼실 텐데, 양문석 사태가 터졌을 때 양문석아 노무현을 욕하잖아요. 그런데도 그냥 싹 감싸버리고 수습을 딱 해버립니다. 그런데 우파는 몇 가지 문제가 터졌을 때 그거를 대처하는 것들을 보면 경험의 차이가 상당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파는 어떤 근본적인 변화와 성찰 이런게 좀 필요해 보여요.
 

(다시 정리하자면) 첫 번째는 일단 양적으로 너무 적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 연령 구성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청년층과 함께 사활적으로 사업을 할 필요가 있어요. 40~50대와 60~70대가 붙어버리면 정서적으로 40~50대 편을 들거든요. 근데 지금의 40~50대를 꼰대로 바꿔버려야 된다고 봐요. 20~30대가 치고 올라오면서 '꼰대 너네가 하는 거 헛소리야' 이렇게 치고 올라와야 하는데, 이 흐름이 약하니  40~50대가 기고만장해 있죠세 번째는 풍토입니다. 그리고 좌파는 동지적 결속감이 상당합니다우파는 상당히 개인적이고 파편화 되어 있어요네 번째는 우파는 현재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인해 복수심, 적개심으로 열정과 열의는 충분한데, 문화적으로 세련된 것들이 굉장히 약해 보입니다.

솔직히 얘기해서 우파분들이 상황을 좀 냉정하게 보셔야 해요. 비교가 안 돼요. 잽이 안 돼요. 잽이 안 되는 상태에서 뭔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 도망치는 거거든요. 손자병법과 삼국지를 보시면 절대로 약자는 정면 승부를 걸지 않습니다. 무조건 도망치고 숨고 연대하고 나는 아니라고 그래야 하는데 자꾸 정면 승부를 걸어요. 사실 공산주의 사상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게 이겁니다손자병법 투쟁 전술 이런 겁니다. 근데 투쟁 전술의 가장 핵심적인 건 처음엔 다 약자였잖아요. 약자가 어떻게 자기 세력을 보존하고 확대할 것 인가에 대한 얘기들로 가득 차 있어요. 손자병법의 제1 구절이 뭐냐 하면 도망쳐라 입니다. 도망치는 게 전술법이에요. 근데 이런 정치 전략 전술이 거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투쟁 전술을 축적하는 것이 아주 급하다고 생각합니다
.
 


Q. 우파 진영에서 상당히 파편화된 모습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걸 어떤 형태로 극복해낼 수 있을지 생각하신 바가 있으시면 좀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민경우: 첫 번째는 공부입니다. 즉 사상 이념 정립이 굉장히 필요해 보입니다두 번째는 무엇보다 세대 교체의 일환으로 특히 젊은 층과의 협력이 필요합니다세 번째는 투쟁 경험 속에서 교훈을 많이 찾으면 좋겠어요. 소모적인 싸움이 굉장히 많아 적한테 거의 타격을 주기 어려운 싸움들을 합니다. 이건 두 가지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하나는 세대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투쟁 경험의 문제 같아요. 저는 30년 이상 이런 걸 해봐서 알 수 있는데, 투쟁을 처음 할 때는 과격해요. 그런데 투쟁을 좀 하다 보면 과격한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게 됩니다. (가령) 북한이 학생 운동에 결정적으로 개입합니다. 무엇을 개입하냐 하면 북한이 라디오 방송에서 계속 강조하는 게 '쓸데없이 과격한 구호를 외치지 마라' 이겁니다.'부드럽게 가라. 부드럽게 가서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가하고 대중과 연대하고 적의 빌미를 주지 마라' 계속 그 얘기를 하는 거예요지금도 그 얘기가 유효합니다. (우파 진영에서도) 그런 게 필요해 보여요.


즉 첫 번째 의식화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해야 되는거, 두 번째는 숫자를 늘리고 세대 교체를 단행하고 세 번째로 투쟁 경험을 좀 세련되게 가져갈 필요가 있겠다.


Q. 이후에도 일들을 계속 해 나가신다고 했는데 우파가 어떤 보조를 맞춰나가면 좋을까요?

민경우: 저는 사상적인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생각해요. 사상적인이라는 건 조국하고 이재명을 악성 포퓰리즘으로 규정한다 라는 건데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상 이론 작업을 하는 게 필요하겠다 싶습니다근데 제가 볼 때 국민의 힘을 대중적으로 개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운동이나 사회단체 활동은 한계가 있더라고요그래서 정당과 매개로 한 활동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세 번째 거리 싸움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 같아요그리고 사상 문화 운동에서 이승만 건국 전쟁 같은 건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40~50대를 흔들어 놔야 하거든요. 가장 좋은 소재가 이승만 건국전쟁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파 싸움은 너무 큰 얘기가 많아요. '주사파를 척결하자' 이건 아무 얘기도 안 하는 거랑 비슷하거든요작고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얘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얼마든지 있는 작은 얘기를 충분히 해줘야 되는데 그런건 잘 모르시고 안 하세요. 그래서 사상 문화 운동을 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Closing


김은구: 민경우 대표님께서 서울대 학교 오신 게 정말 오랜만이시죠? 3년쯤 전에 조국 집회 할 때 오시고 또 그때도 정말 오랜만에 오신 거일 텐데 오늘 또 오랜만에 오셨는데 소감이 어떠신지, 그리고 마무리 발언 부탁 드리겠습니다.

민경우: 저는 확실히 전향했고요, 법적으로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 전향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앞으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운동권 문제를 제기하고 후배들을 설득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겠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운동권 청산 문제를 굉장히 열심히 한 편에 속합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열심히 잘 하겠습니다. 많이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김은구: 오늘 강의 재미있으셨죠? 단순히 재미만 있는 게 아니라 저희가 이제 어떤 일들을 해야 되는지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시죠?  이런 일들을 할 때 또 민경우 대표님께서 또 중요한 역할 앞으로도 잘 감담 하실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트루스포럼 = 황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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