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교회 안의 니체'에 대해 우려하시는 학부모님께

  • 등록 2024.09.23 02: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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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사상가 니체에 대한 어느 기독 학부모님의 우려 섞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작성했던 온라인 편지에 해당합니다. 구체적으로, 부활절을 맞아 교회에서 K-pop 음악(‘아모르파티’ 등)으로 칸타타 형식의 예배를 인도하며 성도들에게 니체의 기독교 신앙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 및 소개한 음악 전공 지휘자에 대한 우려가 주된 발단이었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아래와 같이 칼럼으로 실었습니다.

 

'교회 안의 니체'에 대해 우려하시는 학부모님께

 

안녕하세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니체는 적그리스도적 사상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니체의 사상과 그의 생각이 담긴 음악을 교회로 가져와서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중대한 죄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 공부를 위해 니체를 읽는 것과 니체의 열매를 선한 것으로 포장해서 부활절 성전 안으로 가져오는 일은 엄연히 다른 일인 것이지요. 신앙고백이나 신학적 관점을 충분히 들어봐야 알겠지만, 해당 사역자 분이 도가 지나친 소위 좌파 기독교인이거나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집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니체의 ‘초인사상’

 

 

 

니체는 포스트모던 사상의 아버지라고 여겨집니다. 그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통해 밝힌 초인 사상은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죄인(칭의를 통한 의인됨)"과 정반대 편에 서 있습니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초인(위버멘쉬)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인간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인간은 자기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니체는 인간을 "스스로 넘어가는 존재"라고 주장 하지만, 기독교의 진리가 말하는 구원받은 성도 개인의 존재 의미는 우리 각 사람의 죄를 "친히 넘어가신" 유월절(Passover) 어린양의 보혈 안에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그가 주창한 초인사상은 구원의 주체를 인간으로 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이와 정반대로 구원의 주체를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의 대상을 죄인된 인간으로 보는 것이지요. 

 

 

참고로 니체의 저서의 제목이기도 한 '차라투스트라'는 고대 페르시아의 예언자이자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를 의미합니다. 그런 인물의 입을 빌려 자기 사상의 정수를 밝힌 니체의 생각이 과연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기독교 배경에서 자란 니체의 탈기독교화

 

그 밖에도 니체의 저서들을 보면 그가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니체의 자전적 글에 해당하는 <이 사람을 보라>라는 책은 요한복음 1장 29절에서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보고 말했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디오니소스의 제자가 된 니체

 

니체는 비록 천재 철학자였지만 그리스도를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신 고대 그리스의 우상인 '디오니소스'(로마 신화의 '바쿠스')를 따랐고, 스스로를 디오니소스와 동일시 여겼습니다. 기독교를 연약한 "노예의 도덕"이라고 비판한 그는 스스로 초인이 되기를 원했고, 그리스도 대신 쾌락의 신, 포도주의 신,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의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니체의 반기독교 사상

 

또 다른 저서 <안티 크라이스트>에서는 스스로 검사가 되어 기독교와 그리스도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재판관이 되어 기독교와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심판합니다. 이때 심판의 근거로 삼은 법은 당연히 자기 소견에 따른 법이었지요. 천재 철학자 니체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해 서구의 질서와 기독교 전통을 거부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가 가진 급진성은 소크라테스 이후의 모든 철학적 논의를 전복하며, 우리 모두 소크라테스 이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당대 문명 비판의 수위를 넘어 <안티 크라이스트>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문자 그대로 그리스도를 향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끝으로 이제부터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을 없애자는 말을 남깁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을 기준으로 날짜를 세는 방식 자체를 거부한 것입니다. 결국 그는 교회를 향한 단순한 비판을 넘어 유대-기독교 전통과 인류 문명 전체를 부정한 영원한 이단자로 생을 마감합니다.

 

 

기독교 보수주의자와 학부모는 니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결국, 하나님의 진리를 명확히 알고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니체의 사상을 공부하는 독서까지가 우리에게 '허락된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고 니체의 사상이나 니체의 신앙의 정수인 디오니소스를 노래하는 K-pop 음악을 성전 안으로 가져와 그것을 선하다고 말하는 것은 명백한 죄 또는 심각한 무지(무관심)가 불러온 실수겠지요. 우리 기독교 보수주의자, 부모 세대, 교사 세대, 그리고 자유 시민들이 더욱 깨어 말씀을 가까이 하고 기도에 힘쓰며 포스트모더니즘을 위시한 진화론 및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허탄한 철학을 분별하는 실력을 길러야 합니다.   

 

“신이 죽었다”는 말의 의미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왜 아직도 세상이 모를까!”라는 식의 말을 했습니다. 만약 니체를 가장 긍정적으로 읽는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선언이 당시 생명력을 잃어버린 서구 유럽의 교회를 향한 지식인의 시대 진단이었다는 것입니다. 또는 신바벨론 제국의 2대 왕이었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 BC 605~562년)의 경우처럼 기독교의 하나님은 소위 ‘망치의 철학자 니체’를 도구로 삼아 당시 자기 소견대로 살아가며 복음의 본질을 잃어버린 시대를 향해 경종을 울리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시적으로 심판과 경고에 쓰임을 받은 그 망치 또한 동일한 진리를 기준으로 최종적인 심판대 앞에서 결산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독사과가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VS 독사과의 독을 제거하는 법을 알려주는 사람

 

니체와 같은 근대적 지식인에게는 분명 학문의 자유와 비판의 자유가 있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허락된 자유에는 제한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결코 기독교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 및 서구 문명의 기초인 유대-기독교 전통을 마음껏 저주하고 해체를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만일 진리에 오물이 섞여 있을 때 그것을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 오물을 걷어내 주거나 걷어내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곧 보수주의자들의 역할이 아닐까요?

 

니체의 생각을 교회 성전으로 가져와 "세상의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자”라고 제안한 어느 지휘자의 그럴듯한 수사학이(rhetoric) 왜 유독 진리를 각자의 입맛에 맞게 수정해도 괜찮다는 주장처럼 들릴까요? 시대와 유행이 변해도 늘 진리를 사랑하고 거짓을 분별하며 다가올 통일한국 시대를 이끌어 갈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Claiming to be wise, they became fools" Romans 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로마서 1장 20~22절)

 

(트루스포럼 = 유중원 기자)

유중원 기자 joongwony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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